[아시아경제 조영신 기자]
1985년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재무장관들은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등 주요국 통화를 절상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했다. 이를 플라자합의라고 하는데 이 합의로 인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다.
미국은 당시 대규모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축소하기 위해 엔화 등 주요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평가절상시켰다.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는 30% 이상 급락했다. 반면 미국은 가격경쟁력을 토대로 재정적자 및 무역적자 폭을 줄일 수 있었다. 플라자합의로 미국 경제는 회복됐지만 일본 경제는 엔고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플라자합의로 인해 일본 경제는 현재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76년 킹스턴 체제(변동환율제 도입)를 세계 1차 환율전쟁이라면, 플라자합의는 세계 2차 환율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자합의 이후 28년이 지난 올해 일본 아베 정권이 아베노믹스를 들고 나왔다. 일본 제품의 달러표시 가격을 낮추겠다는 게 아베노믹스다. 양적완화를 빌미로 일본 경제를 부활시키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복안이다.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간판기업인 소니가 5년만에 흑자를 냈고, 미쓰비시중공업과 고마쓰, 교세라 등 일본 주요 기업들의 순이익이 크게 늘어났다. 엔저의 수혜를 본 것이다. 엔저가 지속될 경우 일본 기업의 이익은 더욱 증가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아베노믹스가 한국경제에 직격탄이라는 점이다. 엔화는 지난해에 비해 30% 가까이 절하된 반면 원화 절상돼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 주요기업들이 엔저로 인해 영업이익이 전년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엔저가 단순히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엔저는 '대기업 수출채산성 및 수익감소→중소기업 매출감소 및 이익감소→원고(高)→한국경제 성장 둔화→세수감소→정부 재정적자 증가'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출다변화와 원가절감 등 국내 기업들이 엔저 대응책을 마련중이다. 수출다변화는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원가절감은 곧바로 도입할 수 있다. 원가절감은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수출 대기업의 원가절감 정책은 중소협력업체 납품 가격 인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빌미로 1차ㆍ2차ㆍ3차 협력업체로 대기업의 원가절감 정책이 전가된다면 기초체력이 허약한 중소기업은 몰락할 수 있다. 엔저의 최대 피해자는 중소기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플라자합의로 일본경제가 어려움을 겪었다면, 이번엔 아베노믹스로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차례일지도 모른다. 아베노믹스는 세계 3차 환율전쟁의 서막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창조적 상생관계가 절실한 시점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우리가 답습할 이유도, 까닭도 없다.
조영신 기자 ascho@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