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 한국사회의 힘 센 집단인 관료그룹이 주목받고 있다. 진통을 거듭한 박 대통령의 첫 인사에서 그들은 누구보다 약진했다. 장ㆍ차관급의 넷 중 셋은 전ㆍ현직의 고시출신 엘리트 관료다. '관료의 나라'라는 말까지 나왔다.
인사를 보는 눈길은 따가웠다. 좁은 인재풀, 탕평의 실종, 불통ㆍ밀봉인사에서 부실 검증까지. 그런 세평이 고독한 박근혜식 인사 스타일에서 비롯된 숙명이라면, 관료출신의 대거 기용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인사의 속살이다.
'관료 득세'의 새 정부 인사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관료주의'로 불리는 그들의 견고하고 독선적인 습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공무원에 취업준비생이 몰리는 이유가 뭔가. 불안한 시대에 공직의 안정성은 달콤한 유혹이다. 법대로, 맡은 일만, 윗분 뜻에 따라서, 책임질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안정성의 전제다. 좋게 보면 전문성, 효율성, 연속성이다.
안정성을 뒤집으면 무사안일과 보신주의가 보인다. 시대적 요구인 소통과 융합, 창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퇴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장관 내정자가 업무보고를 받는 대신 토론을 제안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공무원들이 당황해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황당했을 것이다. 평생 보고서와 결재로 살아온 직업 관료라면 그런 도발적인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희로애락을 같이 하면서 한솥밥을 먹은 부하 직원들과 치열한 논쟁이 가능할까. 자신의 손때가 묻은 정책에서 허물을 짚어낼 수 있을까. 그나마 새 바람을 기대케 했던 벤처 기업인 출신 김종훈, 황철주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모두 중도 하차했다.
관료사회의 끈끈한 연대감은 현직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선후배 관료의 우정과 전관예우의 배려는 오래된 습속이다. 마피아ㆍ금피아 하는 말이나 정부 산하기관 대표, 금융기업 감사나 사외이사가 누구로 채워졌는지를 살펴보는 것 만으로 그들의 결속력을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궁금한 것은 새 정부에 포진한 거대 관료세력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코드와 어떻게 결합될까 하는 점이다. 국민행복과 창조경제로 상징되는 국정 슬로건은 새로운 발상의 복지와 창의를 강조한다. 관료적 습관에 길들여진 그들이 과연 새로운 길, 창의적인 열정을 보일 수 있을까.
조상의 직설적 경구는 속담에 살아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거나 '개꼬리 3년 묻어도 황모(黃毛)되지 못한다'는 말은 버릇 내지 습관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험적 성찰이다. 나쁜 것을 알면서도 나쁜 습관을 쉽게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습관은 이성적 판단의 산물이 아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일 뿐이다. '습관의 힘'을 쓴 찰스 두히그는 "뇌 세포에서 기억인자를 완전히 없애도 습관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습관이 집단화하면 관행과 타성이 돼 잘못을 합리화하고 도덕성을 허문다. 최근의 청문회에서 보듯 사회 지도층이란 사람들이 '위장전입'이나 '다운계약서'가 드러나도 '관행'이라 둘러대면 그만이다. 사회적 연대감은 자신을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다. 혈연, 지연, 학연은 연대를 구축하는 훌륭한 성이다. 동창회, 향우회가 번성하는 이유다. 그런 나라에서 힘 있고 동료의식이 남다른 관료사회가 날개를 달았다.
"장관의 어젠다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말도 예사롭지 않다. 정해진 궤도를 한 치도 벗어나지 말라는 경고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관료들은 기꺼이 따를 것이다. 일사불란한 효율성만으로 창조경제가 가능할까. 지금은 고속도로 운전기사도 내비게이션을 켜고 차 없는 우회도로를 찾아가는 세상이다. 그들을 택한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박명훈 주필 pmhoo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