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현실을 제대로 직시했으면 좋겠다. 기사에 자기 이름 몇 줄 나오고, 홈에서 자신을 좋아해주는 몇 안 되는 팬들 보며 착각해선 곤란하다. 스타란 말은 아무한테나 붙이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스타라 하기엔 부족하다."
'국보센터'가 선수 경력의 마지막 순간 후배들에게 던진 조언이었다.
서장훈은 21일 KT 광화문 올레 스퀘어 1층 드림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떠나는 이로서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는 "워낙 어릴 때부터 언론과 접하게 됐고, 그래서 말을 잘못해 혼나면서 조언 같은 것은 조심하는 버릇이 있었다"라고 운을 띄운 뒤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해주고 싶은 얘기를 할 것"라고 말했다.
농구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정확히 말하면 예전의 인기를 갉아먹고 있다. 선수 개인의 명성은 더욱 떨어졌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스타가 여전히 최고 스타다. 농구팬이 아닌 일반인에겐 올스타 최다득표자인 김선형(SK)보다 '레전드 올스타전' MVP 문경은 SK감독이 더 이름값이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프로농구에는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려는 태도가 팽배하다. 이에 대해 서장훈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 기사에 자기 이름 몇 줄 나오고, 홈에서 자신을 좋아해주는 몇 안 되는 팬들 보며 스타가 됐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라고 말한 뒤 "진정한 스타라 불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된다"라고 조언했다.
서장훈이 주장하는 '스타'의 기준은 꽤 엄격하다. 그는 "스타란 말은 아무한테나 붙이는 게 아니다"라며 "나 조차도 스타란 말을 받기엔 한 없이 부족하다"라고 했다. 프로농구 통산 최다인 1만3231득점과 5235리바운드를 자랑하는 '국보센터'조차 스타가 아니라니. 여기엔 나름의 이유와 철학이 있다.
"스타는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동시에,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박지성·박찬호·선동렬·차범근 이런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스타다. 지금 농구계에 그런 정도의 선수가 있을까. 나를 국보센터라 불러주시는데, 국보라 불리려면 정말 큰 감독을 주거나 제대로 된 국위선양을 해야 한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내게 과분한 표현이고, 그래서 영광이면서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진정성을 담은 자기 판단이었다. 동시에 지나친 겸손이기도 했다. 서장훈은 지금도 가장 많은 사람이 알아보는 농구 선수다. 또 코트 위에서 누구보다 열정을 다해 뛰었다. 센터로서 포지션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이겨냈고, 턴오버 상황에선 이를 악물고 코트 끝에서 끝으로 백코트를 했다. "당장 농구를 그만둬야 한다"란 의사의 엄포에도 목보호대를 차고 경기에 나섰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선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엄격한 스타론에 가장 잘 부합하는 농구 선수다. 그렇기에 후배들의 안일한 태도에도 가차없는 비판을 던질 자격도 있었다.
서장훈은 선수 경력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을 묻는 질문에 "대중에 이름이 알려진 뒤 매경기 매순간"이라고 답했다. 그는 "경기를 이기거나 우승했을 때에도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것밖에 못했나'란 생각에 괴로웠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스스로 점수를 준다면 난 30점 짜리 전수"라며 "남은 인생에서도 선수 시절의 아쉬움을 후회하며 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지만, 후배들에게 '좋은 농구 선수'에 대한 끝없는 열망도 강조한 셈이다.
서장훈은 사실상 마지막 '농구대잔치 스타'다. 이제 프로농구엔 더 이상 기댈만한 과거의 영광이 없다. 새로운 별이 떠올라야 한다. 단순히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개인 타이틀을 따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코트에서의 뜨거운 몸짓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선수가 나와야 한다. 그것은 서장훈의 말처럼 지금보다 더 많은 땀과 열정을 쏟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전성호 기자 spree8@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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