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금융, 외풍과 內患 사이] ② 지배구조 문제
바람직하다…親경영진 인사로 구성된 거수기 탈피 필요
너무 세졌다…권한 크지만 책임없어 모럴해저드 역기능
[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금융지주들이 최근 3년간 이사회에서 처리한 안건은 400여건. 이 가운데 단 한 건을 제외한 모든 안건이 가결됐다. 단 하나의 부결이 KB금융지주의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건이다."(지주회사 공시 분석자료)
"사외이사들은 회장이나 은행장 추천권이 있는 등 권한이 막대하다. 하지만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모럴해저드나 대리인비용이 발생한다."(모 금융지주사 임원)
금융지주사 지배구조를 언급할 때 불거질 수 있는 두 가지 주장이다. 실제 현실에서도 이같이 상반된 견해는 충돌한다.
먼저 사외이사가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주장.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를 지낸 한 금융인은 "경영진과 잘 아는 이들 가운데 사외이사들이 추천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특히 비금융권 출신의 사외이사 들은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반하는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제도는 대주주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이사회에 참여시켜 경영자의 전횡을 예방하려는 취지다. 이사회는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총 이사수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문제는 사외이사의 추천 과정이다. 사외이사 후보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이하 사추위)를 통해 결정된다. 이 사추위에는 금융지주 회장도 속해 있다.
회장을 포함해 사추위 구성원들에 의해 후보추천이 독점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사외이사들의 독립성 확보는 사실상 어렵다. 특히 사외이사들이 서로를 재선임하거나 추천함으로써 돌려막기하는 경우도 많다.
구본성 금융연구원 금융정책연구실장은 "사외이사 후보추천시 최고경영자의 직접추천이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사외이사후보 중 최소 1인은 주주 등 비사추위 위원에 의해 추천되도록 하거나 동일 경영진에서의 재임기간을 제한하는 장치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외이사가 독립적이기만 하면 될까. 사외이사들이 회사 경영에 사사건건 반대만 한다면? KB금융 사태는 겉으로는 이사회에서 전략담당 부사장 한명을 해임한 사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본질은 ING생명 인수에 대한 경영진과 사외이사 양측의 시각차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배구조와 맞닿아 있다. ING생명 인수와 관련해서 경영진과 사외이사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섰고, 결국은 사외이사들이 이겼다. 이를 독립적으로 볼 것이냐?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볼 것이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이 위험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경영진은 "사외이사들이 회사의 장기적 발전방안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KB금융지주의 지배구조가 국내 금융지주사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고 독립적이라는 역설은 여기서 나온다.
사외이사들의 권력이 과도하게 비대해져,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 상당수 기업에선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간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권한은 크지만 책임은 없다는 얘기다. 특히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이 없다는 점은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순기능과 동시에 모럴해저드라는 역기능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들이 연 평균 10회 안팎 이사회에 참여하면서 수천만원의 연봉을 받아가고 있다"며 "하지만 일부 사외이사들은 민감한 사안이 발생하면 의견도 내지 않고 기권해버리거나 책임감 없게 찬반표를 결정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외이사들이 책임감 있게 의사결정을 하게끔 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배구조 문제에 관한한 정답은 없다. 사외이사도 마찬가지다. 어떤 제도가 가장 맞느냐는 대안은 금융사를 둘러싼 환경과 개별 금융지주의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나올 수 있다. 구본성 금융정책연구실장은 "사외이사 활동에 대한 평가의무를 강화하고 결과를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대섭 기자 joas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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