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조세천국이던 키프로스의 구제금융 과정에서 예금자들에게도 부담을 지울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세천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고 CNBC가 18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연구단체인 GFI(글로벌금융건전성)에 따르면 2011년도에 러시아에서 키프로스에 투자된 자금이 1997억달러(222조원)였으며, 키프로스에서 러시아로 이전된 자금도 1280억달러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1280억달러는 키프로스의 국내총생산(GDP)의 5배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키프로스에 예치된 예금의 3분의 1가량인 200억달러가 러시아쪽 자금으로 추정하고 있다.
키프로스와 구제금융 협상을 진행 중인 유럽연합(EU)은 예금이 10만유로(1억4400만원)를 넘는 예금자를 대상으로 9.9%의 부담금을 지울 예정이다. 또한 10만유로 미만의 예금자라도 6.75%의 부담금을 내야한다. 이들 예금자들은 부담금 액수에 해당하는 만큼 은행 지분을 돌려받게 된다.
키프로스의 상황이 특수한 상황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구제금융 조건은 역외 투자 비중이 높은 기업이나 개인들로서는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예금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손을 대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이것이 깨졌기 때문이다.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는 2010년을 기준으로 조세천국에 개인들이 맡겨둔 투자액이 21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를 합한 수준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조세정의네트워크의 소장 존 크리스텐센은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해외 조세천국에 은닉한 자금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각국이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부족한 재원 마련을 위해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자, 부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자금을 역외로 옮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같은 경향은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연구기관들은 미국 부자들의 재산이 은닉되어 있는 조세천국으로 케이먼제도, 버진 아일랜드, 터크스카이코스 제도, 버뮤다, 파나마 등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봤다. 이들 나라들의 경우에는 영국 식민시대의 유산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은행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키프로스처럼 구제금융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키프로스의 사태를 보면서 예전처럼 자신의 돈이 안전하리라고 안심할 수만은 없게 됐다.
부유층 재테크 전문가 스티픈 마르티로스 컨설턴트는 "부유층이 자신들의 돈을 맡겨뒀던 역외 조세천국의 상황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며 "이들은 자신이 돈을 맡긴 나라가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키프로스 사태는 세금 회피 목적으로 역외에 자금을 은닉했던 부자들에게도 리스크 관리라는 새로운 짐을 안겨준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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