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장관 "복지부, 국토부 등 미혼모자가족 문제 정교하게 설명해 협조구할 것"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예기치 않은 임신, 가족과의 단절, 출산과 양육. 미혼모들이 살아가는 인생길이다. 이 길에는 여전히 따가운 세상의 눈초리와 홀로서야 하는 고립감, 각종 지원제도에서의 소외로 미혼모들의 자립은 고달프다. 특히 미혼모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로 한 발짝 나아가는 것조차 버겁다. 열심히 일해도 주택문제, 혼자 아이를 키워야하는 상황에 직면해, 그동안 시설에서 받을 수 있는 각종 지원책이 끊기면서 복지사각지대에 처하기 때문이다.
12일 조윤선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은 취임 후 첫 행보로 서울 서대문구 미혼모자가족 복지시설인 '애란원'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6명의 미혼모들을 만나 실제 그들이 겪고 있는 고충을 들었다.
지난 2008년 애란원에 입소해 4년간 시설에서 출산과 양육, 직업교육 지원을 받았던 미혼모 A씨는 전 직업이 영양사였다. 미혼모가 되면서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고, 부모와는 인연이 끊겼다. A씨는 최근 LH 임대주택에 당첨돼 집을 얻어 지역사회로 나왔고, 바리스타를 꿈꾸며 커피전문점에서 시간제로 근무하고 있다. 임대주택 당첨은 사실 미혼모들에겐 확률이 적은데 운이 좋은 경우라는 게 A씨의 이야기다. A씨는 "이혼이나 사별을 통해 한부모가 된 경우와 미혼모들은 상황이 다르지만 창업이나 임대주택 등 지원에서 미혼모들은 '한부모 자격'에 속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는 임대주택 당첨 확률을 높여주는 가산점수에 자녀수별로 1점씩 올라가기 때문에 불리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복지 혜택에서 미혼모 가정과 한부모 가정이 구분돼 있지 않아 실질적으로 자립에 있어 미혼모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직장을 구해도 재산형성이 안 돼 있는 미혼모들은 월급이 120만원 이상으로 올라가면 저소득모자가정에서 제외돼 자립노력이 헛수고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미혼모 B씨는 "SH공사 임대주택에 운 좋게 당첨이 돼 3년을 살았지만 점차 월급이 165만원으로 늘어나자 재계약 자격을 박탈당했다. 지금은 월세 40만원을 내고 살아가야 하는 처지"라며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저소득모자가정 자격은 안 돼 아이돌봄교실, 방과후수업 교육비도 아무 지원없이 내야하는 상황이라 자활이나 직업교육을 다시 받아 저소득모자가정으로 돌아가 임대주택을 다시 신청하려고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자녀 방과후활동 지원금 기준은 저소득수급자, 맞벌이 가정 등으로 미혼모를 위한 특별한 혜택은 없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미혼모들은 정규직에 뽑혀도 4대보험을 내고 저소득모자가정 수급자 자격을 잃게 될까 두려워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한상순 애란원 원장은 "미혼모자 가정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좋지 않은데, 미혼모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자립토록 돕는다면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며 "이제는 미혼모와 그들의 자녀들에 대한 관점을 '미래에 대한 인력 투자'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날 조윤선 장관은 미혼모들과의 담화 후 "보건복지부, 국토부와 재검토할 미혼모 지원 사항들이 많은데, 부처 간 칸막이 없애고 미혼모자가족을 잘 보호하기 위해 아이 취학까지 안정된 경제활동지원, 주거마련혜택 등을 각 부처에 정교하게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은 지난 2007년 40곳에서 지난해 58곳으로 늘어나 있는 상황이다. 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는 미혼모 중 임신여성과 출산 후 6개월 미만 여성인 미혼모들은 784명, 2세미만 영유아를 양육하는 미혼모 가정은 217가구, 출산 후 아이를 입양 보낸 미혼모는 10명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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