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근철 기자]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 출신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은 지난 주 미국인의 눈을 사로잡은 '깜짝 뉴스'였다. 그가 갑작스레 평양에 들어간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로드먼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악동 스포츠맨'이다. 국가대표급 '사고뭉치'가 전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주민통제가 심한 북한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지부터 관심사였다. 상당수 호사가들은 한번쯤 해프닝이 벌어질 것으로 은근히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그는 의젓하게 평양에서 국가 정상급 외교를 펼쳤다. 그의 카운터 파트는 놀랍게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었다. 김 제1 위원장은 그동안 중국의 대표단도 쉽게 만나주지 않았다. 최근 방북했던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일행도 면담엔 실패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로드먼과 통역도 없이 함께 다정하게 농구 경기를 관람했다. 둘이 다정하게 포옹하고 만찬도 함께 했다.
로드먼은 지난 1일 김 제1위원장에 대해 '멋있고 솔직한 사람(awesome, honest guy)'이라는 찬사까지 남기고 평양을 떠났다. 진정 감명받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북한은 유독 로드먼에게 이런 극진한 환대를 베풀었을까. 구글 회장을 회장 제치고 로드먼을 택한 이유는 분명히 있어보인다. 단순히 김 제1위원장이 미 프로 농구 시카고 불스 열성 팬이었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해법의 실마리는 북한의 3차 핵실험에서 찾아야할 듯 싶다. 과거 1,2차 핵실험과 지난 달 12일 실시된 3차 핵실험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1,2차가 그야말로 실험 수준이었다면, 이번 3차는 핵무기 기술 보유를 선언하는 성격이었다. 적어도 북한의 입장에선 그렇다. 이미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미사일 운반 기술까지 지녔기 때문에 이제 미국도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오랜기간 한미양국은 때론 6자회담으로, 때론 양자대화 채널 등을 통해 북한과 지리한 협상을 벌여왔다. 목표는 간단했다. 한마디로 '핵무기 없는' 북한 체제와 경제지원 보장이었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북한은 이제 '핵무기 있는' 체제 보장과 경제지원을 요구하는 단계로 협상 판을 바꿔나갈 태세다.
물론 미국 정부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다. 당장 '북한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라는 불신의 벽이 높다. 미국에게 북한은 여전히 틈만나면 미국에 도전하고, 핵무기 기술 확산을 꾀하고 있는 '불량국가'다. 일단 국제사회 안정에 부합되게 핵을 보유할 기본적인 자격부터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김 제1위원장은 로드먼을 품에 안으며 미국 정치권과 여론에 미묘한 틈새를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드먼은 불같은 성격에 기행과 돌발행동으로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다. 그런 악동 스포츠 맨을 잘 관리하고 품을 수 있는 김정은의 그릇과 체제의 안정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평양 입장에선 로드맨은 최고의 캐스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로드먼은 미국에 돌아오자 마자, 미 ABC 방송에 출연, "김정은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전화 한통"이라며 평양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기 시작했다.
물론 미 행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당장 국무부는 "북한이 자기 주민들 대신 외국인에 대한 대접과 유흥에 집중하고 있다"며 평양의 깜짝쇼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미 정가에선 이미 북한이 핵 보유가 되돌릴 수 없다는 현실이라면 안정적 관리로 정책 목표를 전환해야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도 앞으로 '안정적 관리'의 자격과 당위성을 주장하며 미 정부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전개될 북핵 협상을 두고 피말리는 신경전과 심리전은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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