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충무로에서]직원들에게 호텔에서 밥을 사라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0초

[충무로에서]직원들에게 호텔에서 밥을 사라 정진호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AD

어느 경영자가 들려준 작년 연말 송년회 이야기이다. 담당자가 회사 근처 삼겹살집에서 조촐하게 송년회 를 치르자는 안을 가져왔단다. 회사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으니 거창한 행사는 좀 그렇지 않겠느냐는 거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매출은 성장했다. 하지만 미래 먹거리를 위해 신규 사업에 큰 투자를 하다 보니 이익은 줄었다. 마음 같아서야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해 준 직원들을 위해 비싼 음식점에서 송년회를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가 돈을 버는 것인데 이익을 많이 못 냈으니 조촐한 송년회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런데 송년회를 며칠 앞두고 우연히 미국인 경영자의 인터뷰 신문 기사를 읽게 됐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자축하는 문화가 부족한 것 같다. 잘한 일이 있어도 스스로 축하하지 않는다. 잘한 것을 칭찬하기보다는 부족한 것을 반성하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잘하고도 스스로 축하하지 않으면 오래 못 가고 쉽게 지친다." 기사를 읽은 경영자는 송년회 장소를 호텔로 바꾸고,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을 영상으로 꾸며보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은 행복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큰 감동은 3분 남짓한 영상을 보는 시간이었다. 영상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한 시무식, 직원들이 즐겁게 뛰었던 체육대회, 단체 독거노인 돕기 행사, 신사옥 입주식, 신입사원 채용, 신사업 발표회 그리고 처음으로 TV에 방영된 회사 광고 등 장면 장면이 담겨 있었다. 영상을 보다가 몇몇 직원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경영자 또한 영상을 보며 한 해 동안 회사가 많은 발전을 했고 직원들이 애를 참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경영실적이 조금 떨어졌다고 조촐한 송년회를 했다면 직원들에게 참 미안하고 후회가 많이 들었을 거라는 얘기다.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2% 성장에 그쳤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대기업은 여전히 큰 폭의 성장을 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소폭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익이 감소한 대부분의 기업은 연말 송년회를 조촐하게 치렀다. 송년회조차 취소하고 반성으로 한 해를 마감한 기업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세상에 수익을 많이 내서 주주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기업은 경영자와 직원들을 중심으로 주주, 고객, 사회, 국가와 긴밀히 관계를 맺는다. 기업 활동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고객에게 가치를 주고, 조직 구성원 간에 관계를 형성하고, 개인에게는 가족을 부양하고 자기의 꿈을 실현하는 공간이 된다. 기업 스스로 가지는 꿈도 있다. 큰 회사가 되는 꿈, 일하기 좋은 기업이 되는 꿈, 사랑받는 기업이 되는 꿈,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기업이 존재하는 여러 가지 이유이다. 기업이 돈을 벌어 이익을 내는 것은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기업은 적게는 10여명부터, 100여명, 1000여명, 1만여명이 한 해 동안 공동의 목표와 지향점을 가지고 일하고 관계를 맺는 곳이다. 그곳에는 어려운 일도 있지만 함께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 많다. 문제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기업은 돈을 버는 곳이다'라는 명제 때문에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일들이 사소하고 하찮은 일이 된다. 기업을 경제주체라고 하지만, '경영실적' 외에 스스로 이룬 많은 가치와 성과를 무시하고 덮어 버린다면 얼마나 비경제적인 일인가?


그러니 실적부진을 이유로 지난해 연말을 얼렁뚱땅 넘겼다면, 지금이라도 직원들에게 호텔에서 밥을 사라. 올해에는 모든 기업에 멋진 송년회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정진호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