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국세청과 '선박왕' 시도상선 권혁 회장(63·사진) 간 세금 전쟁이 국세청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국세청과 권 회장이 '역외탈세 여부'를 놓고 2년여간 공방을 벌인 소송에서 법원이 국세청의 손을 들어준 것. 권 회장이 항소의 뜻을 내비치긴 했지만, 판세를 뒤집기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향후 역외탈세에 대한 조사에 한층 탄력이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 정선재)는 12일 조세포탈과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권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2340억원을 선고하고, 권 회장을 법정구속했다.
국세청이 권 회장과 세금 전쟁을 벌인 지 2년 만이다. 국세청은 2011년 3월 권 회장이 국내에 근거지를 두고 있음에도 탈세 목적으로 조세 피난처에 거주하는 것처럼 위장(역외탈세)했다며 추징금 액수로 역대 최대인 4101억원을 매기고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그 해 10월 권 회장을 기소했다. 이후 1년이 넘는 법정 공방이 이어졌고, 선고 공판도 두 차례나 미뤄지는 등 양자 간 다툼이 치열했다.
국세청과 권 회장이 맞선 대결에서 주요 쟁점은 권 회장이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소득세법에 규정된 국내 거주자는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년 이상 거소를 둔 개인'으로, 계속 해외에서 거주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비거주자로 본다. 이에 권 회장은 "나는 일본에서 주로 생활했고, 일본에서 사업을 주로 했기 때문에 한국 거주자가 아닌 일본 거주자에 해당한다"며 소득세 등 세금을 한국에 납부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국외에서 직업을 갖고 1년 이상 계속 거주해도 국내에 가족 및 자산이 있는 등 생활의 근거가 국내에 있으면 역시 거주자에 해당한다는 조항도 법 조항에 포함돼 있다. 사법부는 이를 근거로 권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권 회장이 국내에 주거지를 유지한 채 경제ㆍ사회 활동을 했고 국내에도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는 등 한국을 생활 근거지로 삼아왔기 때문에 국내 거주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권 회장이 국내 거주자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국내의 자산을 해외 페이퍼 컴퍼니 앞으로 양도하는 등 세금을 탈루하기 위해 국내에서의 직업과 소득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2년여 간의 조사 과정에서 권 회장이 국내 거주자인 점을 밝혀내기 위한 정황 증거를 수집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이 같은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은 것이다. '구리왕' 차용규씨, '완구왕' 박종완씨 등 역외탈세 혐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연거푸 패한 후 얻은 성과라 국세청 입장에선 역외탈세 조사에 한층 더 힘을 쏟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탈세는 대다수의 성실한 납세자에게 박탈감을 안겨줄 뿐 아니라 국부를 해외로 빼돌린다는 점에서 악질적인 조세포탈 행위"라며 "앞으로도 (역외탈세)척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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