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지키는 사람들 5>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한국 출판계의 안팎을 조망하는 '관찰자'다. '창작과 비평'에서 출판마케터로 일했던 한 소장은 1998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하며 출판의 전반을 아우르는 위치로 자리를 바꾼다. 출판현장의 문제를 진단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격주간지 '기획회의'로 출판계의 노하우를 집약해온 데 이어 2010년에는 '학교도서관저널'을 창간해 학교도서관을 통한 공교육 혁신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포구 서교동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한 소장을 만나 책의 미래를 물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읽는 행위' 자체는 늘어났다. 이 사람들을 책으로 다시 끌어오는 것이 문제다." 한 소장은 출판의 앞날을 낙관하고 있었다. 출판계에서는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무언가를 읽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책이 아닌 웹의 디지털 콘텐츠라는 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종이책의 텍스트가 아니라 전자텍스트를 읽는 비중이 많이 높아졌다. 책이 주는 경험과 웹 상의 텍스트가 주는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이번에 도서정가제에 대한 글을 써 300매에 달하는 원고를 블로그에 올려놨는데, 책으로 읽으면 방대한 양이지만 웹에서 보면 쉽고 빠르게 읽히더라. 굉장히 다른 장점이 있는 거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독자들을 어떻게 책으로 유인할까. 한 소장은 "책이 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통적 활자문화시대의 독서를 즐기던 인구가 사라졌다. 게임과 만화, 라이트노블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예를 들어 소설은 일종의 하위문화가 돼 버린 거다. 이들이 즐기는 이야기는 다르다." 책은 고유의 지위를 잃었다. 영화부터 게임, 만화 등 다른 매체와 경쟁하고 책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줘야 한다. 한 소장은 그래서 "책이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자를 흡인하는 서사성이야말로 책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웹 상의 전자텍스트와 견주어서도 서사성은 책의 장점이 될 수 있다. 웹이 일차원적 정보를 제공한다면 책은 그걸 엮어 재가공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책은 여전히 힘이 있다. "정보를 단순히 파악한다는 의미에서는 전자텍스트가 빠르다. 그러나 전체를 종합해서 보는 능력은 책을 볼 때 키워진다. 책은 '신체성'에서도 앞서 있다. 내가 몸으로 노력해서 얻은 정보가 아니면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으니까."
책의 변화를 강조하지만 어떤 면에서 한 소장은 '고전주의자'다. 책만의 가치를 신뢰하는 것과 함께 종이책에는 전자책이 따라오기 어려운 장점이 남아 있다고 보는 점이 그렇다. "전자책의 성과는 가벼운 오락물에 집중돼있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이다." 이야기를 멈춘 한 소장은 책장에서 그림책을 꺼내 펼쳐 보였다. 그림책의 책장을 넘기면 시선의 이동에 따라 이야기 자체가 변화한다. "종이책이라는 '디스플레이'는 전자책에 비해서 아직 유효하다"는 증거다.
최근 출판계의 현안인 도서정가제에 대해 묻자 한 소장은 "도서정가제는 책의 다양성을 위해 지켜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관된 도서정가제를 실시하지 않으면 좋은 책을 내는 업체가 먼저 고사한다. 한 출판사에서 태교에 대한 책을 제대로 만들었다며 찾아왔는데, 다른 출판사가 똑같은 컨셉의 책을 대강 짜깁기로 만들었더라. 안 팔리니까 이 쪽에서 30% 할인을 하면 다른 쪽에서는 50% 할인을 하고, 결국엔 다 죽는 거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정가제 고수를 강력하게 주장해 온 한 소장이다. "원칙이 필요하다. 도서정가제가 고수돼야 좋은 인문학 책 등이 계속 나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소장과 출판마케팅연구소의 미래를 물었다. 그가 가장 먼저 꼽은 것은 학교도서관저널의 정착이었다. "현장 교사와 운동가,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데 멍석을 깔아주기 위해 나섰다." 학교도서관저널의 창립을 "사회적 운동"이라고 부른 한 소장은 "학교도서관저널을 통해 공교육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며 희망을 드러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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