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백억 주무르는 '엄마'..아기 키우며 당당히 뛴다
서울 여의도는 한국 금융투자업계의 성지다. 여의도(汝矣島)라는 지명은 현재 국회의사당 자리인 양말산이 홍수에 잠길 때도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어서 '나의 섬' '너의 섬'하고 말장난처럼 부른 것에서 유래됐다. 너 여(汝)를 쓴 배경이다. 불과 8.5㎢ 에 불과한 조그만 섬에서 인력지도를 그려보면 여성들이 차지하는 면적과 위상은 이보다 더욱 미미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맞아 이제 여성의 섬(女矣島)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애널리스트에서 영업지점장까지 신 여성 파워라인(Power Line)이 꿈틀거리고 있다. 본지는 10회에 걸쳐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증권업계 여성전문인력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국내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 중 수위를 다투는 김민정 KDB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여덟살, 일곱살짜리 연년생 아들 딸을 둔 '워킹맘'이다. 새벽같이 출근해 밤 늦게까지 쉴새 없이 일해야 하는 애널리스트의 삶과 한창 커가는 연년생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역할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래서일까. 여의도 증권가에서 성공한 여성 중 아이 엄마를 찾기란 쉽지 않다.
지난 18일 김 위원을 KDB대우증권 본사에서 만나 롤 모델이 있냐는 질문에 되돌아온 답은 현재 여의도 증권가의 워킹맘의 현주소를 알려준다. "롤모델을 많이 찾았는데 아이 엄마는 하나도 없더군요. 성공한 여성 증권인은 미혼이거나 결혼을 했어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애널리스트는 대부분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하다 귀가하는 삶을 산다. 남편 등 가족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 위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체력이다.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타고난 건강체질에 등산, 수영 등 운동으로 다진 체력이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아직 30대 후반이고, 임원도 아니지만 이미 김 위원은 워킹맘 애널리스트라는 새로운 롤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스스로 자립한다는 나이인 30세을 전후한 여자 후배들은 김 위원에게 질문을 많이 던진단다. 30∼35세까지는 전문인력으로서 경력에 매우 중요한 시기지만 결혼과 출산시기와 맞물려 있는 후배들로서는 김 위원으로부터 '묘책'을 얻고 싶은 셈이다.
김 위원은 "(워킹맘으로서) 더 당당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한다. 남편들이 조금씩만 도와줘도 여성들이 훨씬 더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니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함께 집안 일을 나누라는 얘기다.
그는 채권 부문, 특히 크레딧(신용) 부분의 에이스급 애널리스트다. 채권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10년 이상 이 분야에서만 경력을 쌓았다. 다른 애널리스트들과 달리 펀드매니저로도 2년간 활약했다. 채권평가사에서 시작해 증권사, 운용사를 거쳐 2010년 KDB대우증권에 스카우트 됐다.
주식에 비해 채권은 변동성이 적다지만 리스크는 채권 역시 만만찮다. 상황이 나빠졌을 때 주식은 시장에서 손절매를 하면 되지만 채권은 사고가 터지면 제대로 팔 수도 없다. 과거 대우사태부터 LG카드, 최근의 웅진 사태까지 해당 채권을 가진 기관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 투자규모도 기본이 몇백억원 단위다. 이를 추천한 애널리스트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만큼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고 스트레스도 상당하지만 보람도 크다.
국내 채권 시장은 약 750조원 규모, 그 중 400조원이 크레딧물이다. 김 위원의 전문분야가 이 크레딧이다. 채권 애널리스트란 호칭에 "크레딧 애널리스트입니다"라고 정정할 정도다. 아직 크레딧 시장은 블루오션인 만큼 이 시장에서 성장해 후배들에게 결혼해 아이를 낳고도 훌륭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김 위원의 달성진행형인 목표다.
전필수 기자 phi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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