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보다 '권력' 인식 앞서...재취업해도 '낙하산' 오명..."역차별" 호소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지난 연말 공공기관에 취업한 한 청와대 전직 직원 A씨는 출근 시작 직후 노조에 불려가 호된 신고식을 가졌다. 노조 간부들이 전부 참석한 가운데 그 혼자 장시간 이것저것 질문 세례를 받았다.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한 탓에 봉변은 면했지만 싸늘한 눈초리와 날카로운 질문에 그의 등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A씨는 "예전처럼 점령군은 고사하고 요즘은 주변에서 청와대 출신이라는 얘기를 아예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6일 청와대 안팎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서 청와대 직원들이 냉대와 취업난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임기가 끝나는 이 대통령의 '레임덕'의 후폭풍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냉대'는 이 대통령의 추락한 인기와 위상, 민주화 이후 탈권위적인 사회 분위기,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 확산 등과 관계가 있다. '청와대 출신'이라면 해당 인사의 능력ㆍ경력보다는 "권력의 수혜자"라는 부정적 인식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청와대를 떠나 재취업한 B씨는 "출근하자마자 청와대 출신이라고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며 "직원들과의 화합에도 지장이 있고, 노조의 눈치도 봐야하는 등 알려지면 좋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취지여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직 청와대 관계자도 "청와대 출신이라고 환영받던 시절은 지나갔다" "공공기관에 가더라도 괜히 청와대 관련 등 까다로운 민원을 해결하는 심부름꾼 내지는 해결사 정도로 취급받을 뿐 제 식구로 대하질 않는다"고 말했다. 또 "오히려 경력과 충분한 능력을 갖춘 후 민간 기업에 취업한 사람들이 더 잘 나간다"고 전했다.
이같은 낙하산에 대한 비판적인 사회 분위기 외에 경기 침체 등에 따른 심각한 취업난도 청와대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다. 차기 대통령인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직후 '낙하산 금지' 원칙을 천명한 후 공공기관 취업길이 막히자 중ㆍ하위직을 중심으로 '생계 수단'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그렇다고 민간 기업에 가자니 경기 침체로 뽑는 곳이 없다. '청와대 프리미엄'이었던 나이에 비해 높은 직급도 걸림돌이다.
이처럼 '늘공'(행정직 공무원)을 제외한 '어공'(정무직ㆍ행정관) 등 이 대통령의 임기 종료와 함께 청와대를 떠나게 돼 구직 중인 사람은 약 150~200여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전임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주로 청와대 근무로 쌓은 연줄ㆍ경력ㆍ인맥을 활용해 공공 기관ㆍ단체ㆍ공사 등에서 일자리를 찾아왔다. 청와대 안팎에선 능력과 경륜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정권말 낙하산'이라는 이유로 취업을 못하게 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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