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06억달러 규모.. 2003년 이후 최저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지난해 세계 기업인수·합병(M&A) 시장을 달군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세계 최대 PC제조업체 휴렛패커드(HP)가 자회사 오토노미의 회계부정으로 88억달러의 막대한 손실을 본 사건이었다. 지난 2011년 레오 아포테커 최고경영자(CEO)의 지휘 아래 소프트웨어기업으로 체질변화를 꾀하던 HP는 영국의 유럽 2위 소프트웨어솔루션기업 오토노미를 111억달러란 큰 돈을 주고 덥썩 사들였는데, 알고 보니 분식회계 등으로 실적을 부풀렸던 것이다. HP는 사기를 당했다며 오토노미 전 경영진을 고발했지만, 이미 HP의 주가는 시장의 실망감에 10년간 최저 수준으로 미끄러졌다.
2012년 한해 글로벌 경기가 침체국면을 보이면서 기업들이 차입규모를 줄이는 등 몸을 사리자 M&A 시장도 얼어붙었다. HP 사건 같은 악재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M&A에 수반되는 위험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영국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이 인수전에 나서기를 주저함에 따라 지난해 적대적 M&A 규모가 최근 10년간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적대적 M&A는 목표 기업의 경영권을 지배주주·경영진의 의사에 반하여 탈취하는 기업매수다. 지분 공개매수나 다른 주주들로부터 의결권을 넘겨받아 주주총회에서 대결하는 방식 외에, 목표 기업 경영진을 직접 압박해 경영권을 넘길 수밖에 없도록 하는 ‘베어허그(Bear Hug)’도 포함된다.
시장분석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적대적 M&A 규모는 2011년에 비해 33% 감소한 1006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03년 이후 가장 줄어든 규모로, 전체 M&A시장이 위축된 결과이기도 하다. M&A시장 분석업체 머저마켓(Mergermarket)이 집계한 지난해 글로벌 M&A 규모는 총 2조1745억달러로 전년대비로는 2.7%, 2007년에 비해서는 40% 이상 감소했다. 이 중 적대적 M&A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4%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나마 시도된 적대적 M&A 역시 불발로 그친 경우가 많았다. 미국 향수제조업체 코티는 지난해 4월 세계 최대 화장품방문판매사 에이본에 대해 ‘베어허그’ 방식으로 인수하려 했고,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까지 참여하면서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무산됐다.
유명 법률자문사 ‘설리번&크롬웰’의 프랭크 아킬라 글로벌기업부문담당자는 “적대적 M&A는 인수에 필요한 자금 ‘실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고, 목표 기업의 가치가 확실하며, 규제당국의 승인도 얻어낼 수 있다는 인수자의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하다”면서 “지난 한해 M&A시장은 모든 면에서 전반적으로 불투명했다”고 분석했다.
제임스 울러리 JP모건 북미지역 M&A부문 공동대표는 “유럽의 경우 부채위기 확산으로 경제사정이 워낙 악화돼 인수자들이 공격적으로 뛰어들 만한 환경이 못됐고, 다른 지역에서도 계속된 불확실성이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편 M&A 과정에서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경영진에게 매각을 종용하는 등의 사례가 많아진 것도 인수자가 굳이 적대적 M&A에 나설 필요가 없게 만든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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