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중앙은행으로서 한은이 결정하고 있는 통화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현행 '물가안정목표제' 하나의 잣대만으로는 통화정책의 효력을 충분히 발휘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중앙은행의 정책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김 총재는 31일 신년사를 통해 "지난 한 세기 인플레이션 폐해 극복을 중앙은행의 최고 목적으로 삼으면서 다수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조직의 목적 조항에 포함시켜왔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명목GDP 수준을 정책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학계에서 나오고 있고 심지어 어떤 주요 중앙은행에서는 이 정책을 시행할 가능성마저 열어 놨다"고 밝혔다.
이어 김 총재는 "명목 GDP를 목표로 삼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증거가 부족하다"면서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하나의 잣대에 매달려서 중앙은행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할 개연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총재는 올해를 '정치적 격변기를 맞이한 해'라고 정의하며 금융위기에서 회복하려는 노력은 당초에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제에 대해서는 지난 해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신용도를 상향조정할 정도로 경제의 운영이 '안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성장이 둔화되고 내수가 부진했지만 수출호조에 힘입어 매우 큰 규모의 경상수지흑자를 기록했고 물가도 안정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내년 경제에 대해 "세계경제나 우리 경제 모두 지난해보다 현저하게 좋아질 것으로는 예상되지 않고 있으나 동시에 비관적 견해가 많다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총재는 새해에도 한은의 강도 높은 내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한은이 "유능한 중앙은행으로 만드는 것보다 더 우선한 명제는 없다"며 "세계의 유수 중앙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 총재는 직원들에게 ▲미래의 이슈를 고민할 것 ▲국내 위주 시각에서 벗어날 것 ▲익숙한 일 위주로 현실에 안주하지 말 것 ▲주어진 일만 타율적으로 하는 소극적 자세에 머무르지 말 것 ▲내부적으로 고립돼 일하는 관행을 탈피할 것 ▲한은의 업무를 과거처럼 협소하게 정의하지 말 것 ▲모든 행동이 대내외적으로 주목받는다는 점을 잊지 말 것 등 7가지를 제안했다.
그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인용하며 "현재의 이와 같은 난국을 헤쳐 나아가기 위해서는 잠시 동안만이라도 '함께 빨리'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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