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경제정책방향을 관료들은 '계륵(鷄肋)'이라 부른다. 새 정부가 이내 고쳐쓸테지만 내놓지 않을 수도 없어서다. 그래서 임기말 경제정책방향을 쓰는 원칙은 두 가지다. '간단히, 꼭 필요한 것만'.
27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 경제정책방향'은 이 원칙에 충실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고한 뒤 세 가지 명료한 메시지만 담아 공개했다. 대내외 위험을 관리하고, 재정의 경기보완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경제민주화 의지를 정책에 담는다는 내용이다. 박재완 장관이 물러설 수 없는 원칙으로 꼽았던 '균형재정(나라 살림의 적자를 면한 상태)' 얘긴 슬그머니 사라졌다. 대신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을 열었다. 돈을 풀어서라도 민생을 살필 때라는 박 당선인의 의지가 반영됐다.
재정부 최상목 경제정책국장은 "새해에는 대내외 위험 관리와 안정적인 거시경제 운용에 중점을 두겠다"면서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지 않도록 추세선 아래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 경제활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새해 성장률 전망치 조정은 새로울 게 없다. 한국개발연구원(3.0%) 등 여러 민관 연구기관이 줄줄이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음을 고려하면, 정부가 1.3%포인트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경기 회복세를 타고 수출(4.3%)보다 수입(4.6%)이 빠르게 늘어 물가가 2.7%로 뛸 것이라는 전망이나 새 정부 출범에 맞춰 기업들이 미뤄둔 설비투자(3.5%)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주목할 만한 건 일자리 수다. 정부는 새해 성장률을 올해(2.1%)보다 1%포인트 가까이 높게 봤지만, 새로 생기는 일자리 수는 올해 44만개보다 10만개 이상 적은 32만개로 전망했다. 더 이상 성장이 고용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재정부 김범석 인력정책과장은 "지난 10년 동안은 성장률이 1% 오르면 통상 일자리가 6만에서 7만개 정도 늘었지만, 성장률과 고용이 따로 움직이는 올해와 내년엔 이 공식을 일반화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 당선인의 색깔이 드러난 건 재정의 경기보완 기능을 강조한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처럼 장부상 균형을 맞추는 데 연연하지 않고 나랏돈을 풀어서라도 민생을 살피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정책 방향을 확 틀겠다는 신호다.
박 당선인은 하루 전 소상공인단체연합회와 만나 이런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여의도에서 중소기업인들과 만난 뒤 적자국채를 발행해서라도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당선인은 "지금 민생이 워낙 어렵다. 어려운 분들이 힘든 시기에 가난과 어려움에 떨어지기 전에 뭔가 단기간에 이분들에게 힘을 드려야 이분들도 살아날 용기를 가질 수 있고, 재정적으로도 절약이 된다"면서 논란이 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박근혜 예산 6조원 증액' 발언에 힘을 실었다.
내외의 여건을 고려하면 정부가 말하는 "재정의 경기보완"이나 "탄력적 재정운용"은 결국 추경과 맞닿는다. 최상목 국장도 추경 등 재정집행 확대 가능성을 부인하진 않았다.
균형재정 기조를 버리느냐는 질문에 최 국장은 "예산안 편성 당시 균형재정 기조를 반영했다"면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협의해 예산안이 합의되는 결과를 보면 정부 정책의 변화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새 정부의 의지와 정치권의 합의에 따라 정책 기조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최 국장은 이어 "아직 새해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았고, 논의 과정인 만큼 추경을 언급하는 건 시기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면서도 "(박 당선인이 지지하는)추경에 대해 정부가 보수적이라기 보다는 유보적인 입장"이라고 물러섰다. 그는 "국회에 새해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추가 과제를 얘기하진 않았다"면서 "(추경 등)그런 부분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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