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보험' 논란에 여론 뭇매
기업은 '혜택 미비' 외면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기업 스스로 불합리한 거래관행에서 탈피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도입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이 시스템을 만든 경쟁당국이 고민에 빠졌다. 일반 국민들과 정치권은 이 시스템이 기업 '보험'으로 전락했다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반면 실제 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 기업들은 이런 여론 외에 도입 대비 혜택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참여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6년부터 매년 도입 기업의 CP 이행에 관한 등급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등급을 매겨 높은 등급을 받은 우수 기업에는 과징금 감면, 직권조사 면제 등 차등적으로 혜택을 준다. 자율적인 공정거래를 유도하려는 일종의 '당근책'인 것.
지난 28일 공정위는 27개 기업이 올해 CP 등급평가에서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에는 컬러강판 담합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포스코강판과 현대하이스코가 포함돼있어 논란이 일었다. 가맹사업법을 위반하고 가맹점과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공정위에 고발된 BGF리테일도 A등급을 받아 우수기업에 선정됐다. CP 등급평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 중인 사안이고 현재 법위반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점은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CP 기준을 이행하고 있는 기업의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CP 등급 발표가 이뤄질때마다 우수등급을 받은 기업들은 과거 법위반 사례까지 들춰져 여론의 뭇매를 받는다. 과거 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적이 있는데 어떻게 우수기업이 될 수 있냐는 것, 기업에 혜택을 주기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냐는 것이 비난의 주요 내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과거의 법위반과 현재의 노력은 별개로 봐야 한다"며 "기업 내부에 CP를 도입하려면 문화자체를 바꾸는 등 갖춰야 할 게 많기 때문에 계속 과거만 얘기하면 CP를 도입하려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혜택만 바라보고 CP를 도입한다고 하지만 기업이 느끼는 혜택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참여율이 저조한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과징금 감면 혜택을 한 번 받게 되면 이후 등급이 한 단계 내려가고 유효기간도 2년으로 정해져있어 기업은 도입 대비 실제 혜택이 미미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기업의 참여율을 높이려면 도입 문턱을 낮추고 혜택을 늘리는 것이 방법이지만 여론을 생각하면 그러기 쉽지 않다고 공정위 관계자는 귀띔했다. 그는 "CP를 도입하고 높은 등급을 받은 기업들의 사후 법위반수는 1년에 한 두건 수준으로 다른 기업 대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며 "CP 도입을 확대해야 하지만 일반 국민이 인정하고 기업도 동의하는 방법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라고 밝혔다.
김혜민 기자 hme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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