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에 올해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사람 나이로 본다면 1100살을 먹었다. 쉴 때도 되었건만 매년 셀 수도 없는 열매를 선물한다. 바람이 불고 은행이 우수수 떨어지는 날이면 그 소리에 놀란다. 떨어지는 은행 개수에 탄성을 지른다. 강산은 변했는데 자태는 그대로다. 11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A Vigorous Old Age. Vigorous는 '활발한, 격렬한'이란 뜻을 담고 있다. 노익장( 老益壯)이다. 나이를 먹어도 더 건강하고 활발하다는 의미이다. 씩씩하다는 느낌을 담고 있다. 강산이 아홉 번 변하는 구순(九旬)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이 있다. 쉴 때도 되었건만 왕성한 체력과 씩씩함으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99세의 변경삼 창생메디칼 회장. 지난 14일 청담2문화센터 4층 대강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100세 장수비결' 강좌가 열렸다. 변 회장의 장수비결은 간단했다. 오후 10시 이전에는 자고, 담배는 피우지 말고, 술은 3일 건너 한 번씩 마시는 게 좋다고 했다. 많이 걷는 게 장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자신 스스로 하루 1만~1만5000보를 걷는다고 한다.
변 회장은 지난 2009년 전립선 의료기 국제특허를 얻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40여년 동안 한 우물을 파면서 지금도 경영 일선에서 직접 창생메디칼을 운영하고 업무를 챙기고 있다.
올해 96세에 접어든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은 분기에 한 번씩 청주공장에 직접 내려가 연구원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베지밀'을 만든 주인공으로 내년 초에는 자서전 출간을 준비 중에 있다. 후세대를 위한 그만의 경험을 담을 예정이다. 구순의 나이에 후세대들에게 풍성한 '노하우 열매'를 주고 싶은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롯데그룹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은 매주 계열사 회의에 참석한다. 91살의 나이에도 활발하다. 계열사인 롯데백화점, 마트, 면세점 등을 예고 없이 찾는다. 노익장을 보여주듯 올해 초 '체질강화'를 강조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나갈 것을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흑초 전도사'로 알려져 있는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은 올해 91세이다. 박 회장은 '격렬하다'고 표현될 정도의 동선을 자랑한다. 매일 서울 충무로 사옥으로 출근해 임원진들로부터 업무 보고를 직접 받는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간부회의에도 빠지는 법이 없다. 최근엔 젊은이들의 상징인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주식시장에서도 노익장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한 증권회사의 경우 구순을 넘긴 투자자가 몇몇 있다. 이 투자자는 10억 원 정도를 투자하고 시가총액 3위의 초우량 종목에만 투자한다고 한다. 신분 노출을 꺼려 더 이상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는데 증권회사의 말을 빌리자면 "매우 총명하고 활기가 넘친다"고 한다.
94세의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집필활동을 하고 있고, 96세의 송인상 효성그룹 고문(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은 2007년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최고 영예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기도 했다. '부흥과 성장'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고 지금도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인들 스트레스와 위기가 없었을까. 불어 닥치는 바람에, 시대를 휩쓸었던 전란에, 계절마다 닥쳐오는 시련에 위기가 찾아오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 인고의 세월을 견뎌오는 동안 나무는 평상심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그 평상심이 1100살을 이어왔고 사람들에게 존경과 경탄의 대상이 된 것이리라.
변경삼 창생메디칼 회장은 "모든 생물체는 스트레스를 받게 돼 있다"며 "지나치게 과민하게 생각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정신, 평상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비법을 담은 '자율운동법'을 개발해 변 회장은 곧 책으로 묶어낼 계획을 갖고 있다. 평상심을 갖게 되는 순간, 인생은 다시 시작한다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박종일 기자 dream@
정종오 기자 ikokid@
이광호 기자 kwang@
임선태 기자 neoj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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