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지방선거 때 처음 등장한 선거용 정치인 펀드가 지난해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올해 4ㆍ11 총선에 이어 이번 12ㆍ19 대선에서도 활용되면서 선거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는 양상이다. 이번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펀드를 개설해 목표금액 200억원을 이미 다 모은 데 이어 곧 2차 모금에 들어갈 예정이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문 후보보다 20여일 늦게 개설한 펀드는 목표금액 280억원 중 어제까지 100억원을 모았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아직 펀드를 만들지 않았다.
정치인 펀드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용되는 선거자금 모금방법이다. 선거에서 일정 비율 이상 득표하면 국가에서 지급해주는 선거비용 보전금 등으로 원금에 소정의 이자를 붙여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돈을 모으는 식이다. 이것은 장점과 단점을 모두 지니고 있어 양날의 칼과 같다. 잘만 운영되면 공직에 봉사할 뜻과 능력은 있으나 돈이 없어 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출마 문턱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공직자가 선거 때 진 빚을 갚느라 뇌물의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 펀드는 원리금 상환을 득표율에 연계시킨 유사 금융상품으로 볼 수도 있다. 이를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의 일부로 인정하는 게 바람직한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부자 출마자나 국고지원을 받는 주요 정당 후보가 정치인 펀드를 개설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지세를 결집하고 과시하기 위해서다. 이런 측면은 오히려 돈선거를 부추기고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 유력한 후보의 펀드에만 투자가 몰리면 정치 신인은 더 불리해진다.
그동안 정치인 펀드가 법률적 근거도 없이 선거 때마다 활용됐고, 다행히 큰 부작용은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일부 조직적 동원이 이뤄지는 등 부작용이 커질 조짐이 엿보인다. 금융당국과 선거관리위원회는 방관하는 태도다. 각각 '이름만 펀드이지 금융시장 펀드와 다르다', '개인 간 이자부 금전거래일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먼 산 보듯 방치할 일인지 의문이다. 정치인 펀드를 앞으로도 계속 허용할 것인지를 재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당장은 그 운영에 관한 규칙을 관련 법규의 틀 안에서 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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