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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사...이기붕 집무실에서 시민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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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서울]서울시 신청사 86년 역사를 더듬어 보니....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희망제작소가 될 수 있을까.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 변할 수 있을까.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맘껏 소리 지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까.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아닌 '언제나 다가가고 싶은' 공간으로 다가올까.


5000만 명의 대한민국 인구 중 5분의1인 1000만 명이 사는 서울시. 서울시의 신청사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 떠오른다. 시청은 그동안 권력자의 공간이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출입하기 쉽지 않았다.

권력자들은 독단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지시하는 것에 길들여졌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함께, 그리고 참여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서울시청사가 86년 만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달 새로 문을 연 서울시청사는 화려한 외관을 가진 현대적 건물로 태어났지만 짧지 않은 동안 굴곡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서울시청사...이기붕 집무실에서 시민 품으로 1965년4월27일 시청 애드벌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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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서울시청사는 일제에 의해 1926년 준공됐다. 일제는 1910년 을사늑약 이후 조선의 식민지화를 강화하기 위해 수도 이름을 '한성부'에서 '경성부'로 바꾸게 된다. 이어 1926년 '경성부청사'를 준공한다. 이에 따라 현 서울시청사는 해방 이후인 1946년 서울시청사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20년 이상을 경성부청사란 이름표를 달게 된다.


1945년 해방된 이후 일제가 물러나고 1946년9월28일 김형민 초대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모름지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시청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기쁨도 잠시. 1950년 6ㆍ25 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으로 피난가면서 서울시청사는 또 다시 아픔의 공간으로 빠져들게 된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동안 북한인민위원회 건물로 사용된 것이다. 3년 동안 주인을 잃은 후 9ㆍ28 수복으로 서울시청사로 제자리를 찾았다. 일제 시대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서울시청사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무심히 받아들이는 공간이 돼 버렸다.


이런 굴욕의 역사만큼 이 곳에서 근무한 서울시장도 초대 김형민 시장부터 현 35대 박원순 시장까지 모두 31명의 시장이 재임했다.

서울시청사...이기붕 집무실에서 시민 품으로 서울시 신청사 외관


윤보선 전 대통령이 2대 서울시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해 이기붕 전 부통령이 3,4대 서울시장, 허정 내각 수반이 8대 서울시장을 맡았다.


또 장기영 전 한국은행 총재이 10대, 윤치영 전 국회부의장이 13대, 고건 전 총리가 22,31대,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30대, 이명박 서울시장이 32대 서울시장을 지냈다.


서울시장 출신으로 윤보선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 대통령이 된 이명박 대통령도 있는데 역대 서울시장들은 총리급 거물 정치인들이다. 이명박 시장 당시 청계천 복원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많았다.


옛 서울시청사는 4년여 기간 동안 리모델링을 마친 후 최근 장서 20만권, 390개 열람석을 갖춰 시민들의 서울도서관으로 태어났다. 서울도서관으로 사용된 이 건물은 2003년6월30일 등록 문화재 제52호로 지정돼 오랫동안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게 됐다.


현 서울시청사는 1만2709㎡. 지하 5, 지상 13층 규모로 ▲시민청 ▲다목적홀 ▲ 하늘광장 등 시민을 위한 공간과 업무 공관으로 이뤄졌다.

서울시청사...이기붕 집무실에서 시민 품으로 서울시 신청사와 서울도서관, 서울광장


박원순 시장은 지난달 13일 서울시 신청사 개청식에서 "오늘 86년만에 지어진 새로운 청사가 개청식을 갖는 날"이라면서 "앞으로 100년, 1000년 빛나는 서울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고 축하했다.


내년 1월12일에는 신청사의 시민청 개관을 맞아 '작은 결혼식'이 열린다. 서울대병원 레지던트 권준명(26) 씨와 초등학교 교사 서현진(26) 씨가 주인공이다. 작은 결혼식이라는 취지에 맞게 축의금과 예단, 폐백을 하지 않는 대신 그 비용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환자와 학생들을 도울 계획이다.메이크업과 헤어를 비롯해 사회 축가 사진촬영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 재능기부로 '시민과 함께 만드는 특별한 결혼식'을 올린다. 시민청 결혼식은 시민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어 가는 결혼식이다.


새로운 청사에서 '결혼식'까지 올리는 풍경에 다양한 시민들이 재능기부로 함께 참여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시민들의 곁으로 다가오는 시청사가 되고 있다


서울시청사 건너편 현 서울시의회 건물도 상당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34년12월10일 준공된 지상 3층 규모의 이 건물은 건립당시 부민관으로 이름지어져 연극, 강연회, 음악회 등 집회가 가능한 공간이었다. 한국 전쟁 후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건립되기 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돼 현대사에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91년 이후에는 서울시의회 의사당과 사무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시장이 사는 공관인 시장공관도 관심사다. 현 서울시장 공관은 종로구 혜화동 27-1 1628㎡에 지하1, 지상 2층 건물. 1939~40년 중추원 참의원을 지낸 하준석이 1940년 건축했다.


1953~57년엔 우리나라 해군을 창설해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이 거주하다 1959~79년 대법원장 공관으로 쓰였다. 본관 건물은 목조 건물로 지은 지 70년이 넘어 오세훈 전 시장 시절 비가 새는 바람에 2500만원 정도 들어 지붕 보수 공사를 할 정도로 낡은 건물이다.

서울시청사...이기붕 집무실에서 시민 품으로 혜화동 현 서울시장 공관


그러나 현 혜화동 서울시장 공관도 머지 않아 자리를 비워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공관이 한양도성(서울성곽)이 지나는 곳에 위치해 한양도성 복원 차원에서 이전을 해야 할 입장이다. 특히 문화재청이 한양도성 보존과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위해 현 공관이전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시장 공관 후보지를 백방으로 뛴 결과 가회동 93-1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가옥을 낙점했다. 백인제가는 대지 2460㎡, 안채 사랑채 중문간채 대문간채 별당채 별채로 이뤄진 대표적인 부자집 한옥이다.


오형철 서울시 총무과장은 "새 시장 공관을 찾기 위해 성북동 등 한옥 등을 백방으로 뛰었으나 보통 40억~50억원을 들여야 할 정도였다"면서 "어려운 서울시 재정 등을 감안해 시 소유인 가회동 백인제 가옥을 정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청사...이기붕 집무실에서 시민 품으로 새로운 시장 공관이 될 백인제가 안채




박종일 기자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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