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친생부인의소(親生否認─訴) 없이 유전자 결과만으로 혼외 자녀를 親자녀로 인정 할 수 없어
[아시아경제 지선호 기자] 유전자 검사로 명백히 '아버지-자식' 관계가 밝혀졌더라도 이를 인정받으려면 그 때까지 '아버지'라고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과 '친부(親父)가 아니다'라는 증명을 재판(친생부인의소(親生否認─訴))을 통해 먼저 받아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아들 최모씨(미성년자)가 친부 김모(78)씨를 상대로 낸 인지청구 소송에서 김씨는 최씨를 친생자로 인지하고 친권자 및 양육자로 친모(親母) 배모(42·여)씨를 지정한다는 원심을 파기하고 다시 판결해 1심 판결을 취소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아내가 혼인 중에 다른 남자와 관계를 통해 낳은 아이는 민법 제844조 제1항에 따라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받는다"며 "이 추정을 번복하려면 '친생부인의소'에 의해 친부가 아니라는 판결을 먼저 받은 후에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그 외의 방법으로 친생자가 아님을 주장할 수 없다"며 "따라서 다른 남자의 친생자라고 주장해 인지를 청구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되 직접 재판하기 충분한 사건이므로 이 사건 1심판결을 취소하고, 소(訴)를 각하한다"고 덧붙였다.
아내 배씨는 지난 1992년 간호보조사로 치과병원에서 일하던 중 이 병원 원장인 김씨의 아이를 임신하게 됐다. 그러나 배씨는 한해 전에 이미 최모씨와 결혼한 상태였다.
배씨는 혼외정사로 임신한 사실을 김씨에게 털어놓고 김씨로부터 1000만원 가량을 받았다. 또 배씨의 남편 최씨도 김씨에게 양육비,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해 2500만원을 받아냈다. 이후 배씨와 최씨는 이혼했고, 배씨는 이 모든 일이 최씨가 계획적으로 한 일이라는 사과문을 김씨에게 남겼다.
1심은 "아들 최씨와 김씨 사이가 유전학적으로 부자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이 밝혀진 이상, 아들 최씨와 아버지 최씨 사이에서는 혈연적 부자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명백하다"며 "아들 최씨와 남편 최씨 사이에 친생추정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김씨는 아들 최씨를 친생자로 인정하고 배씨를 아들 최씨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지정한다고 판결했다.
2심도 친생추정이 번복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김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지선호 기자 lik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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