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헌법재판소가 그간 정상궤도를 벗어나며 미뤄온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국회는 19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국회 추천 몫인 강일원·김이수·안창호 후보자에 대한 선출안을 모두 가결 처리했다. 여·야가 따로 추천한 김 후보자와 안 후보자에 대한 적격성 여부로 입장이 엇갈리며 진통 끝에 맺은 결과다.
국회는 대법원장이 지명한 김창종·이진성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도 받았다. 이로써 헌재는 장장 14개월여의 ‘위헌상태’를 벗어났다. 헌법 111조가 규정한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은 갖춰진 셈이다. 다만 20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신임 5명의 헌법재판관에 대한 취임식은 대통령의 재가 지연으로 미뤄졌다.
헌재는 지난해 7월 조대현, 이어 지난 14일 김종대·민형기·이동흡·목영준 등 5명의 전임 헌법재판관이 차례로 자리를 떠나며 ‘재판관 공백 상태’를 맞았었다. 일시적이나마 반수 이상의 재판관이 자리를 비워 이달 선고일정조차 잡지 못한 헌재가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헌법재판소법은 심판사건의 경우 접수 180일 이내 종국결정의 선고를 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무조건 따라야 할 강행규정이 아닌 훈시규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법이 정한 6개월을 훌쩍 넘긴 사건들도 있다.
앞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헌재의 위헌 상태가 7개월째를 맞은 지난 2월 “국회가 재판관을 선출하는 것은 국회의 헌법상 권한인 동시에 의무이며 국민에 대한 책무”라고 촉구한 바 있다. 헌정 이래 처음으로 헌재가 국회에 공개서한을 보내 의견을 표명한 경우였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제 정상화를 맞은 헌재도 법률이 정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언급된 전자발찌 소급 적용의 위헌 심판 사건은 2년째 계류중이다. 2007년 제기된 사립학교법 개정안 위헌 심판 청구 사건은 5년째다.
전자발찌의 경우 연일 강력 성범죄가 발생하며 전자발찌 부착명령의 적용 대상을 넓히라는 여론이 들끓어 수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미래를 망치는 악법 중 악법인 만큼 모든 것을 걸고 재개정해야 한다"며 개정 사학법을 반대했던 박근혜씨가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나선 상황에서 헌재가 선뜻 사학법 위헌 여부를 결론내기 쉽지 않으리란 지적이 뒤따른다.
오는 27일 상고심을 앞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건으로 헌재와 대법원의 갈등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곽 교육감은 2010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사퇴 대가로 선거가 끝난 뒤 2억원을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건넨 혐의로 지난 4월 2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사범에 대한 재판에서 전심 판결 선고로부터 3월 이내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은 그러나 대법관 임명동의안 지연으로 재판부 공백을 맞아 예정된 7월을 한참 넘겨 상고심 일정을 잡았다. 곽 교육감도 올해 1월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사후매수죄 처벌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고 헌재 결정까지 대법원 선고를 미뤄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법조계 안팎에선 1·2심 모두 유죄를 선고한 만큼 대법원도 유죄를 선고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헌재는 어떤 선택을 취하더라도 논란을 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결정 자체를 미룰 경우 ‘정치적’이라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합헌’으로 결정하면 교육계의 반발을 살 우려가 뒤따른다.
시기적으로 대법원 선고보다 늦을 수 밖에 없는 ‘위헌’ 결정이 나면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무효가 되고 재심부터 밟게 된다. 헌재와 대법원의 결정이 엇갈릴 경우 해묵은 갈등 양상이 격화될 위험이 지적된다.
앞서 지난 7월 퇴임한 김능환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헌재가 갖는 법률 위헌심사권과 법원의 법률해석권한을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시키는 것이 국민 전체의 이익에 유익하고 사회·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며 헌재의 존재에 회의적으로 반응한 바 있다. 당장 올해 법률 개정으로 효력을 잃은 조세감면규제법의 부칙규정을 두고 올해 GS칼텍스, 교보생명 사건에서 연이어 헌재와 대법원이 엇갈린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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