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가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에 대해 '무딘' 비판을 했다. 대신 네덜란드의 노총위원장인 빔 콕(Wim Kok)과 미국의 저명한 판사였던 라과디어(F. Laguadia)를 띄웠다. 이 대표는 당초 원고 연설문 원고에 없던 사형제 폐지도 직접 추가했다.
이 대표는 연설을 마친 뒤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그 배경에 대해 "보통 야당 연설이 기존 정부 비판이 많은데 이번엔 우리가 집권해서 할 일, 정책을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며 "의회 풍토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를 우연히 마주친 것을 소개하면서 "예산심의 잘하자"면서 " 이번 예산은 이명박 정부가 집행할 게 아니고 당신 당이나 우리 당이 집행하는 거니 잘하자"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이 원내대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의 이날 연설에 대해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서도 칭찬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고 이명박근혜, 이명박새누리 정권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날선 비판을 예상했지만 예상을 벗어나 주요 정책현안에 대해 통계와 국내외 사례를 들며 차기 집권에 대한 그림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사형제폐지의 경우도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대표연설에 언급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오자 이를 반영해한 것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이날 연설에서 관심을 모은 것 중 하나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체결 제언이다. 그러면서 소개된 인물이 빔 콕이다. 이 대표는 "대표적인 사회협약 중에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Wassenaar Agreement)이 있다" 면서 "이 협약의 주역이 당시 노총위원장인 빔콕인데 그 분은 당시에 상당히 양보하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이후 10년간 네덜란드 경제는 고성장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제안한 사회협약은 경제주체인 노동자, 기업, 소비자 그리고 국가가 참여하는 방식이다. 그는 "1970년대 오일쇼크가 왔을 때, 각국이 위기를 어떻게 넘겼는지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사회적 합의제 모델을 가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위기를 좀 더 빨리 극복했다고 나와 있다"면서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는 영미형 모델보다는 유럽의 사회적 대화 모델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네덜란드는 노사가 중심이 돼 협의를 했고 아일랜드는 사회협약을 맺어온 20년 동안 노사뿐만 아니라 여성단체, 농민단체, 소비단체, 환경단체들이 다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선별적 복지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대학등록금고 새누리당의 실질적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명목등록금, 즉 고지서에 찍혀 나오는 등록금 총액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복지예산도 늘려야 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상도 현재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빈곤층에 추가로 차상위, 차차상위계층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여기서 미국의 저명한 판사인 라과디어의 사례를 소개했다. 라과디어는 뉴욕시 판사로 재임하던 중 어린 손자 3명을 돌보던 가난한 노인이 배고픈 손자들을 위해 빵집의 빵을 훔쳤다가 경찰에 잡혀온 사건의 재판을 맡았다. 라과디어는 이 노인에게 벌금형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과연 무엇이 이 불쌍하고 힘없는 노인으로 하여금 빵을 훔치게 만들었는가를 진지하게 물었다. 이에 자신을 포함한 뉴욕시민 모두의 책임이라고 선언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벌금을 부과했고 재판정에 앉아있던 방청객들에게도 벌금을 내게 했다. 그리고 즉석에서 그 벌금을 걷어서 노인에게 줬다. 그 노인은 벌금을 물고 남은 돈을 받아 쥐고는 눈물을 흘리며 법정을 떠났다.
이 대표는 이 스토리를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이 판사가 오늘날에도 미국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라과디어 판사이며, 그의 이 판결은 미국 역사상 명판결로 꼽히고 있다"며 "뉴욕시에는 두 개의 큰 공항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케네디공항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판사의 이름을 딴 라과디어 공항"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민방위 제도에 대한 신선한 제안도 내놨다. 현재 민방위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출근 전에 잠시 들러 참석서명만 한 뒤 정상업무를 보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지금은 요식행위에 불과한데 이를 앞으로는 사회재난대비 훈련 정도로 바꿔 치안을 예방하는 데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아동 성범죄및 치안강화를 위해 정부,지자체 등이 참여해 사회적기업 형태로 퇴직자를 채용, 이들은 통학시의 가디언(보호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소개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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