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올림픽 메달의 효과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남자 펜싱 플뢰레의 맏형 최병철(화성시청)은 최근 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라디오 출연을 물론 밀려드는 행사 요청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독특한 펜싱 스타일과 특유의 유쾌한 입담으로 팬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결과다.
최병철은 2012 런던올림픽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 도전 삼수 만에 거둔 수확. 2000 시드니올림픽 김영호의 금메달 이후 12년 만에 남자 플뢰레의 메달 명맥을 이은 주인공이다. 이미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제대회를 평정했지만 2전 3기만에 결실을 맺은 올림픽 메달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스스로도 "금메달리스트 못지않은 인기"라며 예상치 못한 환대를 즐기고 있는 눈치였다.
◇ 내가 '괴짜검객'이라고?
국제펜싱연맹(FIE) 플뢰레 랭킹 4위 최병철은 런던올림픽에서 '괴짜검객'이란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현란한 발놀림과 지칠 줄 모르는 공격 본능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경기 방식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점은 복병 알라엘딘 아브엘카셈(이집트)과의 준결승. 쏜살같이 상대 허점을 파고들다 반격을 허용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무려 4차례나 경고를 받았다. 연이은 실점에 점수 차가 벌어졌고 결과는 12-15의 석패. 석연찮은 심판 판정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웬만한 국제대회라면 경고까지 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의아하기는 했지만 번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장에 있던 대부분의 심판들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 경기 부심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라고 전했다. 평소에도 국제심판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는 그는 "심판들도 내 펜싱 스타일을 상당히 좋아한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 펜싱이라 경기가 일찍 끝나기 때문"이라며 웃어 넘겼다.
우여곡절 끝에 3,4위전에 나선 최병철은 안드레아 발디니(이탈리아)를 15-14로 따돌리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남현희, 구본길 등 유력한 메달 후보들의 잇단 탈락과 신아람의 오심 파동으로 침체된 펜싱 대표팀의 분위기를 바꾼 터닝 포인트였다.
◇ 신아람에게 사심 없었다. 내 이상형은?
최병철은 동메달 획득 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1초 오심으로 메달을 놓친 신아람을 향해 "네가 이겼어. 누구나 아는 거야"라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신아람을 향한 관심의 표현'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그는 "숙소에서 아람이 경기를 혼자 지켜보면서 마음 아팠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은 절대 없었다. 단지 취재진의 요청에 응했을 뿐"이라며 "아람이 문제 이후로 심판들도 한국 선수들의 판정에 장난을 치지 못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상형의 조건으로 "자신을 내조해 줄 수 있는 여성"을 꼽았다. "솔직히 같이 운동했던 여자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지만 다들 성격이 만만치 않다. 이전에 커리어우먼과 교제를 했는데 서로 바빠 챙겨주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앞으로 결혼을 전제로 만날 수 있는 분은 차분한 성격의 일반인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 절망을 딛고 일어선 승부사
10여 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정상의 자리를 지킨 최병철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생애 두 번째였던 2008 베이징올림픽. 컨디션과 기량 면에서 전성기라 느꼈던 대회였지만 숙적 오타 유키(일본)에 한 점차로 패해 16강에서 탈락했다. "그 때 이후로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술도 많이 마시고 방황을 했다. 게다가 3~4년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았던 발목 수술을 받게 되면서 한동안 손에서 검을 놓았다."
설상가상 선수와 코치로 동고동락하며 친형처럼 따르던 대표팀 선배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으로 실의에 빠졌다. "안 좋은 일은 흘리고 좋은 것만 받아들이는 성격인데 코치님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왔던 사이라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분이었다..."
절망을 딛고 다시 검을 잡은 최병철은 2009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모습을 드러내 재기를 노렸다. 마지막 경기에서 9-5로 앞선 상황. "상대는 다리에 쥐가 나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솔직히 수비만 해도 이기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약점을 이용해 이기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공격적으로 밀고 나갔다."
결과는 한 점차 역전패였고 결국 태극마크를 손에 넣지 못했다. 스스로 떳떳했기 때문에 결과에 만족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최병철 한 물 갔다'라는 소문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 선수는 충분히 상황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얘기가 떠도는 것에 충격을 받아 독을 품고 훈련했다."
결국 2년여 만에 태극마크를 되찾은 최병철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난 아직 최고라 말할 수 없다
올림픽 금메달은 검객 최병철이 꿈꾸는 마지막 종착역이다. 국내외 유수의 대회를 석권했지만 '금빛 찌르기'를 완성하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히 그의 도전의지를 불러일으킨다. 32살의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는 걸림돌이다. 주변에서도 사실상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라 여기는 분위기라 더 큰 목표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했다.
"10년 동안 수많은 대회에 출전하면서 플뢰레는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만약 이번에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면 '내가 최고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아직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솔직히 올림픽에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러나 후배들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고 여러 가지 상황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가시적으로 그가 밝힌 다음 목적지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자신의 경기 스타일을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팬들을 위해 재밌는 경기를 보여주겠다는 목표다. 1년 동안 소속팀 훈련에만 매진하며 향후 진로를 고민해 보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이번 올림픽 이후 펜싱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었다는 얘기를 듣고 흐뭇했다. 하지만 펜싱은 농구나 축구, 야구처럼 인기 종목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다. 장비 문제로 배드민턴이나 탁구처럼 생활 스포츠로 가기도 힘들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클럽이 많이 늘어나고 많은 분들이 규칙을 이해하고 경기를 볼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됐으면 좋겠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팬들에게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자 임무다."
김흥순 기자 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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