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동글소/모두 없어진지 오랜/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 이용악의 고향, 경성이란 마을은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다. 산마을에서 나온 물건을 바다에 가서 팔기 좋다. 당나귀를 이용해서 산을 넘어 무곡(貿穀)을 하러다닌다. 무곡은 곡식 장사이다. 곡식을 나귀에 실어 사와서 바다에 가서 판다. 항구로 갈 때는 동글소를 쓴다. 동글소는 큰 황소이다. '콩실이에 늙은'은 '콩을 싣고 다니다가 늙은'이란 뜻으로 오랫 동안 그 일을 했다는 의미이다. 그 집 외양간에 있던 당나귀와 동글소가 다 없어졌다. 왜 없어졌을까. 어떤 이유에선가 장사가 불가능해졌을 것이다. 시인은 나이 들어서 그 집 외양간을 둘러보며 감회에 젖는다. 아직 짐승들의 냄새가 다 떠나지 않았는데, 이 집 사람들의 행방은 알 수 없다. 흉집에 살던 식구의 가장이 털보였다는 얘기를 이쯤에서 꺼낸다. 털 달린 짐승들의 운명과 같은 방식으로 사라진 털보 아저씨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을지도 모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