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제대로 못하는 중앙은행
정부 경기부양에 신경쓰다 失期…구성원 소통도 낙제점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물가안정'.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 로비에 걸려있는 현판의 글씨다. 이 현판은 지난 1997년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한은의 목적이 '통화가치 안정과 은행신용제도 건전화'에서 '물가안정'으로 바뀌면서 만들었다.
'물가안정'은 한은의 제1의 목표이자 존재이유다. 그래서 일각에선 한은을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김중수 호 출범 이후 한은이 과연 이 역할에 충실했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물가안정과 경기부양이라는 두 가지 균형추 가운데 경기부양에 지나치게 무게를 실었다는 비판이다.
한은 '실기론(失期論)'은 이 같은 논란의 연장선이다.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의 전격적인 금리인하는 실기론에 기름을 부었다. 요지는 한은이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구사하지 못했다는 것. 즉 12개월간 금리동결에 집착하다가 팽창적 통화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을 놓쳤다는 주장이다. 결과론적이지만 한은이 지난 1년 동안 금리동결 대신 금리인상 쪽으로 방향을 틀어 기준금리를 4% 대 정도로 맞추어놓았다면 지금 시점에서 추가 금리인하 여력이 생긴다는 게 이 같은 주장의 핵심 논거다.
오석태 한국SC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4월~6월(2분기)까지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반토막이 난 마당에 한은이 7월의 금리인하를 '선제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경기둔화가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리인하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한은이 '금리정상화 기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도 엇박자였다"고 지적했다.
물론 2분기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4% 성장에 그친 것으로 발표되면서,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조치가 적절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 총재는 7월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곧 나오는 2분기 GDP를 보면 알겠지만 최근의 경기지표가 생각보다 좋지 않게 나왔다"며 "최근 들어 세계경제의 하방요인이 커졌고 GDP갭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회성 금리인하만으로 충분한 경기부양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하반기에도 경제상황이 그다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은이 예상하듯 '상저하고(上低下高)'가 아닌 '상저하저(上低下低)'가 될 가능성도 높다. 8월 금통위에서도 금리인하가 불가피하다. 지난 1년 동안의 금리동결이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한 채권딜러는 "한은은 이번 금리인하로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금리인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의 내부 리더십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김 총재는 부임 후 2년 동안 파격적인 인사와 국제인제 등용정책을 통해 보수적인 한은의 문화를 깨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부 조직원들의 공감대가 없는 개혁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김 총재의 소통 능력은 낙제점이다. 김 총재를 가르켜 '인플레 파이터'가 아니라 '한은 파이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은 직원은 "총재는 외부에서 한은을 보는 시각에 대해 주목하라고 늘 강조한다" 며 "그러나 정작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한 외부의 비판에 대해선 제대로 시장과 교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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