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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성선설, 성악설...그리고 악플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27초

[데스크칼럼]성선설, 성악설...그리고 악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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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만큼이나 황당한 질문 하나. '사람은 본성이 선할까, 악할까'.


이 고리타분한 물음에 대한 고민은 영화가 늘 한발 앞선다. 사실 '선(善)과 악(惡)'의 본질론적 동질성은 영화의 단골 메뉴다.

단돈 5달러 때문에 지하 감옥에서 1년간 복역하다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 어느 죄수의 실화를 담은 '일급살인'이 그렇고, 흑조를 탐하는 백조의 핏빛 도발을 그린 '블랙스완'도 마찬가지다. 도덕성이 무너진 고담 도시의 광기를 투영한 '배트맨 다크나이트'는 또 어떤가. 선과 악은 서로 다르지 않고 동전의 양면이라는 선악동체(善惡 同體)를 역설한다.


21세기 미국 헐리우드에서 선악동체를 스크린에 담았다면 중국 전국시대는 성선설과 성악설이 양립했다. 맹자(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가 주장한 성선설은 사람의 본성을 '선'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하늘로부터 내려받은 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보다 70년 뒤 순자(기원전 298~238)는 성악설을 역설하면서 사람의 본성을 '악'으로 정의했다. 사람들은 날 때부터 자기 이익을 구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순자는 수양과 예의를 통한 사회 질서를 역설했다.


서론이 길었던 것은 선악에 대한 논쟁이 디지털 세상에서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익명에 숨은 네티즌들은 때론 한 없이 선하고, 때론 살기 어린 악을 분출한다. 선과 악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공존한다.


선한 넷심은 흔히 약자가 생겼을 때 폭발한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의 동료 여학생 성추행 사건은 자칫 묻힐 뻔 했지만 들불 같은 넷심 덕분에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됐다. 얼마 전에는 버스기사가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업고 탑승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자 네티즌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중학생이 네티즌들의 간절한 기도로 인공호흡기 도움 없이 호흡을 시작했다는 소식에는 코끝이 찡해온다.


하지만 넷심이 마냥 선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살기와 광기가 번득인다. 잔인한 언어 폭력도 서슴치 않는다. 독일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영국 모델이 네티즌들의 악성댓글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은 우리 내면의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단지 그녀가 카메라 앞에서 예뻐보이려 했다는 것이 '죄 아닌 죄'였다.


지난 해에는 우리나라 여성 아나운서가 야구 선수와 열애설로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치의 해, 정치인들을 향한 언어폭력들도 어김없이 사이버 공간을 오염시킨다. 채선당, 된장국물녀, 악마 에쿠스 등 맹목적인 폭력의 사례는 손에 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게다가 언어폭력은 유효기간도 없다. 욕설과 비방은 인터넷 어딘가에 그대로 기록된 채 불쑥불쑥 고개를 쳐든다. 고약한 넷심이다.


아시아경제신문이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진흥원과 실시하는 '굿바이 악플' 캠페인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매달 말일을 '악플 지우는 날'로 정해 혹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되짚어보자는 취지다.


이 캠페인에 어린 학생들도 동참했다. 서울 구룡초등학교 학생들이다. "무심코 남긴 악플이 남에게 상처가 되는 줄 몰랐다"는 한 학생의 다짐은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굿바이 악플은 혼탁한 디지털 세상을 정화하는 작은 도전이다. 악플 지우기를 통해 우리 내면의 '악'이 아닌 '선'을 기대해본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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