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
A에게 물었다. "코끼리는 어떻게 생긴 동물입니까?" A는 대답했다. "까칠까칠한 피부에 원통 기둥처럼 생긴 동물입니다."
다시 B에게 물었다. "코끼리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털이 보숭보숭한 뱀처럼 생겼습니다."
장님인 A와 B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일화다. A는 코끼리의 다리를, B는 코를 만져본 결과를 말했다. 부분만 보고 전체인 양 잘못 인식하는 오류를 경계하는 우화다.
여론이 여러갈래로 나뉘는 경우 각기 다른 부위를 만진 느낌으로 코끼리를 얘기하듯 이편 저편으로 나뉘어 갑론을박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하지만 함정이 숨어있다. 다수의 여론이라고 해서 항상 옳지는 않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 여론 형성 과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한강 수변경관관리 계획의 윤곽이 알려지면서 이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계획은 한강변 재건축 최고 층고를 35층으로 제한해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스카이라인을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일단 이해 당사자들 쪽에선 반대 의견이 많다. 대표적인 게 박원순식 스카이라인의 바로미터로 꼽혔던 신반포1차 아파트다. 35층으로 승인을 받은 뒤 오세훈 전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계획 때문에 61층 초고층을 추진하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결국 35층으로 결론이 났다. 시장이 바뀌면서 1년을 허송한 셈이니, 초고층 관철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는 낙제점이다. 초고층 건축물이 시세차익을 실현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에서 반발도 적잖다.
반대의 또 다른 한 축은 밀도를 거론한다. 초고층 건축으로 건폐율을 낮춰야 빽빽한 병풍 아파트를 피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신반포1차 조합의 주장과 반대파의 논거가 되는 밀도도 각각의 입장과 논리를 놓고보면 나름대로 맞는 얘기다.
하지만 박 시장의 수변경관관리방안을 논하기에 앞서 일단 코끼리를 멀찌감치 놓고 볼 필요가 있다. 박 시장이 구상하는 전체적인 도시계획을 이해한 뒤 찬반을 논해야 비로소 정확한 비판이 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문승국 서울시 부시장을 만나 "박원순 시장이 구상하는 서울시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라고 물어봤다. 문 부시장은 자타공인 도시계획 전문가로 박 시장의 서울시 도시계획 청사진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채널로 꼽힌다.
문 부시장은 "산과 강, 건축물이 어우러진 도시 경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서울시의 산 허리를 둘러싼 성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심 전체를 성곽이 둘러싼 도시는 서울이 전세계에서 유일하고 이 성곽을 경관의 중요 포인트로 만들겠다는 게 박 시장의 서울시 도시계획이란 것이다.
코끼리 전체를 보면 수변경관관리방안은 아파트 사이사이로 보이는 경관의 일부를 고려한 스카이라인이 아니다. 서울을 상징하는 북한산과 남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 또 서울을 둘러싼 성곽이란 문화유적, 최종적으로는 건축물 자체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경관이다.
이같은 박 시장의 도시계획 철학에 대한 시비는 차차 가려질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층고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하지만 현재 찬성을 주장하는 쪽이든 반대쪽이든 일단 코끼리 전체를 보면서 코끼리의 생김새를 논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물론 각자의 이해관계 앞에서 시장의 철학은 그다지 중요한 비판의 변수가 아닐 수 있다. 찬반양론이란 게 결국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싸움 아닌가.
그래도 일단 A와 B에게 다시 물어보고 싶다. 코끼리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김창익 기자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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