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었다. 드랙쇼가 펼쳐지는 클럽 ‘라카지오폴’(La Cage Aux Folles: 새장 속 광인)은 연일 관객으로 가득 찼고, 스스로에게 당당한 라카지걸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가끔 앨빈(정성화·김다현)이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20년간 그녀를 향한 한결같은 조지(남경주·고영빈)의 사랑 덕에 앨빈은 마담 자자로 당당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 생트로페의 해풍과 햇살, 공기마저도 모두를 축복하듯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고요는 태풍의 전초전인 법. 극보수주의자 정치인을 아버지로 둔 안느(김보라)와의 결혼을 위해 조지와 앨빈의 아들 장미셀(창민·이민호·이동하)이 등장하면서 <라카지>는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간다. 아들은 상견례를 위해 앨빈 대신 “생물학적 엄마”를 요구하고, 앨빈은 그런 아들을 위해 ‘삼촌’ 역을 자청한다. 과연 엄마는 끝까지 삼촌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의 결혼은 성사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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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의 원더랜드
1973년 프랑스 연극 무대에 처음 등장한 뮤지컬 <라카지>는 동성애자에 대한 묘사가 디테일하고, 이성애자인 아들이 부모에게 갖는 요구도 제법 현실적이다. 안느의 아버지 딩동(천호진·윤승원)을 통해 정치인을 풍자하고, “오늘 웃고 내일 슬픈 눈물 흘리겠지”라 노래하며 연신 밝은 분위기 안에서도 성소수자들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지난 7월 4일부터 시작된 국내 초연은 지난번 이지나 연출이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그랬듯 기존의 구조에 젊음과 화려함을 더해 ‘쇼 뮤지컬’로서의 정체성을 먼저 확보한다. <라카지>를 달구는 에너지의 80%는 클럽 ‘라카지오폴’의 열 명 남짓한 라카지걸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뼛속까지 여성성을 지니도록”(서병구) 만들어진 안무는 골반을 이용한 웨이브가 주를 이루고, <백조의 호수> 속 ‘흑조신’을 연상시키는 발레부터 캉캉, 탱고에 이르기까지 다양성 부분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무대가 탄탄하면 탄탄해질수록 동성애자들의 자기긍정은 프로로서의 모습을 띠고, 비로소 마담 자자가 “나는 나일뿐 나는 나야 이유란 없어”라 노래하는 ‘I am what I am’에 이르러 폭발한다.
군더더기 없는 무대 위에서 더블 캐스팅된 배우들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춤춘다. 엄마의 느낌이 강한 원작 속 앨빈을 위해 연출가는 “무조건 앨빈은 정성화여야 한다”를 외쳤고, 결과적으로 정성화의 앨빈은 희극인으로서의 코미디와 뮤지컬무대에서 보여준 진지함이 절묘하게 결합되며 <라카지>를 대표한다. 정성화의 기교 없이 묵직하고 안정적인 바리톤 음색은 무대에 믿음을 주고, 노련한 남경주는 리더로서 쇼를 이끈다. 반면 김다현과 고영빈은 20년째 변치 않는 사랑에 방점을 찍으며,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극을 만들어냈다. 앙상블을 제외하고 극중 의상 체인지가 가장 많을 것으로 보이는 집사 자코브 역의 김호영 역시 장면전환을 위해 기능적으로 쓰이는 순간마저도 특유의 에너지로 관객을 집중시킨다.
<라카지>는 스토리와 음악, 안무와 조명, 세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제 위치에서 제 몫을 해내며, ‘연출’이라는 단어를 정의한다. 하지만 화려하되 정갈한 이 무대는 연신 가뿐 숨을 내뱉는 라카지걸을 통해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여전히 한국사회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둡다. 하지만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정성화)는 주제를 노골적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스며들게 한 <라카지> 덕분에 관객들은 “날 인정하게 할 거야”라는 가사에 기립박수로 화답한다. 공연은 9월 4일까지 LG아트센터.
사진제공. 악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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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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