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울수록 나라 예산의 역할은 커진다. 정부는 올해 예산을 앞당겨 풀고 집행률도 높이기로 했다. 추락하는 경기를 붙잡아 끌어 올리려는 재정적 노력이다. 그런 정부의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산의 편성과 집행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구먹구구식의 예산 편성으로 정부 사업에 차질에 생기기 일쑤고 미처 다 쓰지 못한 예산 불용액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어제 내놓은 '2011년 회계연도 결산 중점 분석'보고서에서 지난해 예산 불용액은 총 5조8023억원으로 1948년 정부 수립 후 최고액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0년보다 2600억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 1.6%에서 2.2%로 높아졌다.
불용액이 발생하는 주 요인은 정부가 사업계획을 세울 때 예측과 판단을 잘못했거나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때문이다. 쓰지도 않는 예산을 관행적으로 잡아 놓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예 예산을 집행할 사유가 없어지는가 하면 부처 간 협의지연과 과다 편성 등으로 예산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연례적으로 집행실적이 부진한 18개 부처ㆍ청의 138개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 사업에 편성된 2011년 예산액은 6조2521억원에 이르나 실제 집행은 45.3%인 2조8337억원에 그쳤다. 2010년의 59.7%보다 더 떨어졌다.
예컨대 감사원과 경찰청은 매년 인건비를 부풀려 계상, 불용액이 과다하게 발생한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3~4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갈등관리경진대회와 시ㆍ도체육대회의 예산을 매년 편성했다. 관변단체가 국고보조금을 소진키 위해 한겨울에 무궁화 심기 행사를 해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국방부의 시설이전사업은 과다 책정으로 매년 예산이 남는다.
인건비를 부풀리거나 열리지 않는 행사 예산을 매년 편성하는 것은 세금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국민을 우습게 보는 태도다. 재정의 경기 기능이나 예산의 효율성을 백번 외쳐도 공직자의 무책임한 행태가 고쳐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부는 20일부터 불용액 최소화를 위한 정기 예산점검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정된 국가재정의 효율적 배분을 해치는 독소 요소를 철저히 찾아내 바로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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