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이 또 오를 모양이다. 그런데 인상을 추진하는 모양새가 몹시 사납다. 한전은 두 자릿수에 달하는 큰 폭의 요금 인상을 거듭 요구한다. 정부는 겉으로는 못마땅해 하면서도 인상폭을 낮추면 내심 용인하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정부와 한전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소비자인 국민을 우롱하는 꼴이다.
한전은 어제 이사회에서 평균 10.7%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했다. 시행을 유보 중인 연료비 연동제를 반영할 경우 실제 인상분은 16.8%에 달한다. 원가 이하의 판매가격으로 2008년부터 누적 적자가 8조5000억원에 이르러 큰 폭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소액주주들이 지난해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고율 인상 요구에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내는 일단 높은 인상폭을 요구해야 깎여도 일정 수준의 인상이 이뤄질 것 아닌가 하는 계산이 있는 듯하다. 지식경제부의 태도가 이를 방증한다. 지경부는 물가 부담 등을 이유로 한전의 두 자릿수 인상안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홍석우 장관은 지난 주말 "최대한 인상률을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절전 효과를 위해 여름 성수기가 오기 전에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국민은 떨떠름하다. 한전은 지난 4월에도 13.1% 인상을 의결한 바 있고 지경부는 과도하다며 돌려 보냈다. 한전은 이번에 사실상 그보다도 더 높은 인상률을 요구했다. 지경부는 또 난색이다. 인상 요인이 있다면 합당한 기준에 맞춰 올리는 게 맞다. 하지만 한전과 정부가 인상폭을 놓고 '핑퐁게임'하듯 하면서 흥정하는 식은 옳지 않다.
전기 요금은 이미 지난해 8월 4.9%, 12월 4.5% 두 차례나 올렸다. 한전 직원의 지난해 평균 급여는 7400만원에 이른다. 2010년 기준 억대 연봉자는 750명으로 지경부 산하 공공기관 60곳 가운데 가장 많다. 원가보상률이 낮은 게 직원들의 고액 연봉도 한 원인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전이 지난해 전기요금을 올릴 때 약속한 1조원 규모의 원가 절감 노력을 제대로 지켰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소액주주 눈치를 보는 한전, 전기요금은 올려줘야겠지만 한전이 알아서 적절히 인상률을 낮춰주기 바라는 정부. 그 사이에서 소비자는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