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트레이드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깔린다. 그 주는 전력 보강이다. 당장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다양한 카드를 점검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경우도 있다. 일부 구단들은 분위기 쇄신을 노리고 교환을 꾀한다. 정상적인 팀 운영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선수를 떠나보내는 일도 가끔씩 발견된다.
손을 맞잡는 구단들은 대부분 트레이드가 서로에게 이득이 되길 희망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둥지를 옮기는 선수의 행복을 기원하기 마련이다. 사실 유니폼을 갈아입는다고 남남이 되는 건 아니다. 프로야구 판에서 사제, 선후배의 관계는 계속 유지된다. 더구나 최근에는 유턴 현상도 적잖게 벌어진다. 이택근과 최동수는 올 시즌을 앞두고 친정인 넥센과 LG로 각각 복귀했다. 이택근 영입 당시 김시진 감독은 “우리가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생각이나 했겠나. 헤어짐은 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택근은 “팀을 위해 희생하겠다”라며 화답했다. 최동수는 복귀 소감에 대해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LG로 다시 돌아오게 돼 너무 행복하다”라고 밝혔다.
지난 22일 조영훈은 7년 이상 머물렀던 삼성을 떠났다. 투수 김희걸과 맞트레이드돼 KIA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선수인생에서 이적은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간 삼성에서 많은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던 까닭이다. 10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은 한 번도 없었다. 200타수 이상을 남긴 시즌도 2011년(245타수) 단 한 차례뿐이었다. 입지는 올 시즌 더 좁아졌다. 조영훈은 삼성이 치른 61경기 가운데 25번(48타석) 출전하는데 그쳤다. 남긴 성적은 타율 2할3푼3리 3타점. 류중일 감독은 제자를 떠나보내며 “다른 구단으로 가면 주전으로 활동할 선수인데 우리 팀에서는 어렵다. 이승엽에 채태인까지 있어 설 자리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출전 기회 보장은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올 시즌 타점 1위(58타점) 홈런 2위(16개)로 승승장구하는 박병호가 대표적인 예다. 2010시즌까지 타율 2할2푼 이상을 한 번도 넘지 못하며 LG의 만년 유망주로 남는 듯했던 그는 지난 시즌 넥센 이적 이후 전혀 다른 선수로 바뀌었다. 타격 부문 상위권에 두루 이름을 올리며 리그를 대표하는 4번 타자로 거듭났다. 박병호는 갑작스런 상승세의 이유로 “출전 기회 보장으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타격에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붙었다”라고 밝혔다.
KIA 구단은 조영훈에게서 ‘제 2의 박병호’를 기대한다. 선동열 감독은 이미 취재진을 통해 중용 방침을 밝혔다. 조영훈은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반등의 출발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평이다. 조영훈은 생애 두 번째로 많은 경기(88경기)에 나선 2006시즌 타율 2할8푼3리 26타점을 기록했다. 건국대 시절 국가대표 4번 타자로 활약했고 한때 ‘포스트 이승엽’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영훈은 “이제는 벼랑 끝에 온 셈이나 다름없다. 좋은 기회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걱정스런 마음에 전화를 걸어 미안함을 전한 류중일 감독에게는 밝은 목소리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다른 각오를 드러낸 건 김희걸도 다르지 않다. 11년 만에 고향 팀으로 돌아온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잘 해서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류중일 감독은 트레이드 발표 당시 “김희걸이 아니었다면 선동열 감독의 트레이드 제안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김희걸의 눈앞에 놓인 현실은 조영훈과 판이하게 다르다. KIA는 애초 왼손타자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꾀했다. 삼성은 당장 김희걸로부터 이적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2군에서 제구 등을 점검한 뒤 승격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사실상 앞길은 KIA 때보다 더 험난해졌다. 정인욱, 이우선 등 언제든 1군에서 뛸 수 있는 선수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정들었던 팀을 떠나게 돼 섭섭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밝힌 김희걸의 이적 소감에서 일부 관계자들이 복잡한 감정을 발견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기회는 충분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류중일 감독은 “김희걸은 검증된 투수”라며 “1군의 투수들이 부진하면 바로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와 같은 포항 출신이다.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훨씬 안정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라고 기대했다.
새로운 출발선상에 놓일 선수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아질까. 당초 올 시즌 트레이드를 향한 구단들의 태도는 다소 소극적일 것으로 전망됐다. 치열한 순위 다툼으로 서로를 견제하는 눈이 매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레이드는 26일까지 벌써 세 차례 성사됐다. 조영훈-김희걸을 비롯해 최경철(넥센)-전유수(SK), 용덕한(롯데)-김명성(두산) 등이 그 주인공이다. 같은 날짜 기준으로 지난 시즌은 두 차례였다. 사례는 모두 웨이버 공시된 선수의 영입이었다. LG에서 한화로 둥지를 옮긴 김준호, 넥센에서 SK로 이동한 조재호 등이다. 같은 날짜 기준으로 세 차례 이상 트레이드가 이뤄진 건 2008시즌 이후 4년만이다. 그 움직임은 부상자 속출 등으로 더 활기를 보일 수 있다. 김상현, 박병호 등으로부터 재기의 바통을 넘겨받을 선수는 과연 누가 될까. 숨은 진주의 활약에 올 시즌 프로야구의 판도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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