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경기 불황에 고가의 명품 브랜드들도 콧대를 낮추고 있다. 좀처럼 백화점 할인행사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던 유명 해외 브랜드들이 세일 행렬에 끼는가하면 할인 품목들도 이전처럼 재고떨이 차원이 아니라 신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런 불황 속에서도 그나마 낫다는 품목은 명품 시계와 주얼리. 업계에서는 국내 명품 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들면서 '명품 가방'과 '명품 의류'에 집착했던 소비 트렌드가 시계ㆍ 주얼리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전까지는 보여주기식 명품 소비로 눈에 잘 띄는 가방, 옷 등이 주로 소비됐지만 최근에는 자신만의 가치 소비를 위한 명품 소비로 바뀌면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시계ㆍ주얼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이러한 명품 시계들마저도 최근 자존심을 접었다. 세트로만 판매해왔던 컬렉션 시리즈 제품을 낱개로 판매하는 등 판매 방식에 변화를 주기로 한 것. 소비자의 구매력을 끌어올려왔던 명품들이 이제는 역으로 소비자의 구매여력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셈이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3~4개 묶음 세트로만 판매해왔던 스위스 워치메이커인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은 메티에 다르 시리즈 컬렉션 시계를 올해 처음으로 개별 판매한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기존까지 메티에 다르 시리즈는 세트로 묶어 5억~6억원에 판매해왔지만 올해 출시한 '메티에 다르-레 주니베르 장피니' 시리즈는 개별판매가 가능하도록 본사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명품 시계 콜렉터들은 바쉐론의 메티에 다르 시계를 구입하고 싶어도 무조건 세트로만 사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꺼렸던 게 사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가격적인 부담감을 낮춰주기 위해 낱개로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바쉐론 콘스탄틴 관계자는 "메티에 다르 컬렉션 시계 중 세트로 나온 제품들은 전부 3~4개 묶음 세트로만 판매해왔다"면서 "이번 컬렉션에서는 3개 세트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낱개로 판매할 수 있도록 본사 방침 자체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워낙 가격이 세다보니 세트로 다 사려면 4개 세트 기준 약 5억원~6억원이 넘는다"며 "이렇게 되면 아무리 구매여력이 있다고 해도 가격 부담이 돼 고객 폭이 확 줄지만 1억원 중반대면 구입할 수 있을 만한 층이 넓어진다"고 귀띔했다.
개당 가격은 1억 4000만원~1억 50000만원 수준. 기존 시리즈 제품과 가격대는 비슷하지만 구매자들은 묶음판매로 사야한다는 부담감이 덜해질 수 있다.
이러한 가격 부담감이 덜해져 판매 문의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메티에 다르-레 주니베르 장피니 시리즈를 낱개 판매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이전 시리즈인 메티에 다르-레 마스크, 메티에 다르-마끼에 시리즈에 비해 전화 문의가 40~50% 가량 늘었다.
업계에서는 명품 시계마저 콧대를 꺾은 것에 대해 '장기 불황'을 이유로 꼽는다. 지난 4월 백화점 명품 매출은 26개월 만에 상승세가 꺾여 전년대비 5.9% 감소했으며 명품에 힘입어 매출 신장세를 보였던 백화점들의 매출도 크게 줄어 현대백화점은 전년대비 신장률이 1.5%, 신세계백화점은 2%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경기 불황에 명품 브랜드들은 '이미지' 때문에 가격 할인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지만 대신 마케팅에 있어서 변화를 주고 있는 셈이다.
바쉐론 콘스탄틴 관계자는 "세트 판매에서 개별 판매로 바꾼 뒤 반응이 거의 즉각적이었다"며 "출시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자료달라, 시계 보러 가겠으니 예약해달라'는 문의가 쏟아졌다. 기존 시리즈 제품들이 들어왔을 때에도 이렇게 적극적이진 않았는데 역시 낱개로 판매한다고 하니 가격적인 부담이 덜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