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처럼 대학로에 갔다. 소극장의 연극이나 뮤지컬 관람, 그리고 간단한 생맥주 한 잔이면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에 족한 곳. 그래서 가끔 가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공무(公務)로 갔다.
금년 예산에서 가장 역점을 둔 '일자리' 중에서도 문화일자리에 대한 현장점검 목적이었다. 한 달에 두 번꼴로 하는 현장점검을 금년 상반기는 온통 '일자리'에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창업하려는 청년, 특성화고 학생, 고졸 신입 은행원, 등록금 걱정하는 대학생을 몇 차례 만났고 이날은 문화예술인을 만나기 위해 대학로에 간 것이다.
우선 간담회로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의 문화계 인사들과 사전 각본 없이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예술에 대한 열정도 느꼈고 비즈니스와 연결되는 아이디어도 들었다. 정부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도 경청했다. 1시간 반으로 예정된 간담회는 2시간 반을 넘겨 열띠게 진행됐다. 역시 현장의 목소리는 살아 있었다. 문화ㆍ예술ㆍ관광 부문에 분명 뭔가가 있다는 확신을 작년 예산편성 때에 이어 다시 했다. 젊은이들의 열정과 끼, 창의, 다이내믹스로 볼 때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생각을 한층 강화시켜 주었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가기가 힘들었다.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문화시장을 키우는 수요 측면의 접근과 특정사업을 지원하는 공급 측면의 접근 중 어떤 것이 더 우선인지, '지원'과 '투자' 간의 조화는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순수예술과 돈벌이 되는 문화에 대한 정책 차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더 알고 이해를 하고 싶어도 서로가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때는 서로 상대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경제정책이나 예산편성 분야의 전문가랍시고 일했지만 문화예술이나 문화산업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료나 페이퍼로 읽은 보고서가 전부였다. 간담회 말미에 깜짝 '고백'을 했다. 정말 진지하게 현장을 보고 배우러 왔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고. 우리 실력이 짧은 탓이라고. 공부를 한참 더 해야겠다고.
퇴근시간을 훌쩍 넘겨 간담회를 마무리 짓고 창작뮤지컬을 한 편 봤다. 출연자들의 연기가 관중과 한 몸이 되는 수작(秀作)이었다. 두 시간여를 조금도 쉬지 않고 집중하게 했다. 역시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관람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작품 감독, 출연배우들과 생맥주집에서 호프타임을 가졌다. 밤 늦게까지 문화산업, 일자리, 예술가의 삶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유익했지만 역시 찬 맥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내가 잘 모르고 이해 못하는 세상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쓴 안경으로 얼마나 세상을 재단(裁斷)했는지, 내 생각에만 붙잡혀 사는 '확신범'으로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봤다. 공직자에게 소통능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만든 정책을 국민이 잘 알게끔 해야 한다. 소통의 진정성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서 나오고 다양한 상대의 분야에 대해 잘 알 때 가능하다. 학문으로 이야기하자면 분야를 통합하거나 분야 간 국경을 넘는 '통섭(統攝)'과 같은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국정 전반에 대한 정책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을 대학로 호프집에서 뮤지컬 배우와 이야기 나누며 해봤다.
'고백' 뒤에 얻은 수확도 있었다. 적어도 자리를 같이했던 분들이 우리의 진심은 알아준 것 같았다. 그것이 소통의 첫걸음이란 생각도 들었다. 자정을 넘겨 돌아오는 길에 그날 들은 이야기와 건의를 복기했다. 부족한 실력, 모자란 공부, 탁상공론에 익숙한 책상물림으로의 한계라는 생각이 멍에처럼 어깨를 짓눌렀다. 한 달에 두 번꼴로 하고 있는 현장점검이 '현장을 점검하는 것'이라기보다 '나를 점검하는 일'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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