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서울시의 뉴타운 출구전략이 구체적인 법령 체계를 갖추기도 전에 삐걱대고 있다. 지난 2월 개정된 도정법에 맞춰 ‘구역해제 50%룰’이라는 큰 틀만 공개됐다. 하지만 사업지별 주민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가지려던 ‘뉴타운·재개발 시민 토론회’가 몇몇 비대위 소속 인사들의 반발로 30여분에 무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달 19일 서울시가 ‘뉴타운·재개발 수습방안’을 내놓은 뒤 열린 첫 시민토론회였지만 논의는 커녕 서로간 욕설과 몸싸움이 난무했다.
이날 비대위가 문제삼은 것은 서울시내 뉴타운·재개발 추진과정에서 추진위원회나 조합 설립에 동의한 주민의 50%가 반대하면 구역지정을 해제하겠다는 출구전략의 실효성이었다. 서울시의 뉴타운 출구전략이 ‘세입자나 투자자를 위한 대책’에 초점이 맞춰졌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응암9구역 비대위 관계자는 “말이 50%지 찬성했던 사람 중 절반이 마음을 돌리는게 쉬울 것 같으냐”며 “어떤 배경을 갖고 50%라는 동의율을 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불광5구역만 하더라도 하염없이 지연돼온 사업을 버티지 못한 주민들 중 절반 이상이 투자자로 바뀐 탓에 사업해제 가능성은 낮아졌다. 사업의 내용이나 추진기간 등의 수정은 불가피해졌지만 백지화하지는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불광5구역 비대위 관계자는 “실제 살고 있지 않으면서 돈을 투자한 사람들은 당연히 개발에 찬성할텐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느냐”며 “세입자, 투자자들을 위한 대책은 되겠으나 개발을 원하는 원주민들의 의견반영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구역해제의 최대변수인 ‘매몰비용’ 처리안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갈등 요인으로 지목됐다. 전국주거대책연합 관계자는 “서울시가 구역해제의 방법을 열어준 것이 확실하지만 (매몰)비용처리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해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주민반발에 대해 ‘예상했던 일’로 받아들이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분위기다. 무산된 토론회는 지난번 발표한 1차 개정사항과 그동안의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는 자리였고 사용비용 지원기준 등이 담긴 2차 내용이 발표되는 8월까지 이같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토론회에 의도적으로 반대측 주민들을 배제하지는 않았다”면서 “지금과 같은 의견차가 있어야 문제점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고 대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주민간 이해관계를 풀기 위해 나선 서울시의 의도는 논란을 남긴다. ‘시민토론회’라는 타이틀을 달고도 270석의 자리는 대부분 각 구청 담당 공무원이나 조합장이 차지했다. 심지어 개발에 반대하는 비대위측에는 이번 토론회에 대한 안내문 조차 전달되지 않았다. 홍제2구역 비대위 관계자가 “찬성하는 사람만 모아놓고 어떻게 토론이 가능하냐, 서울시가 진행한다는 토론회는 향후 주민들의 의견을 모두 들어봤다는 실적을 남기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하게 된 이유다. 비대위도 뉴타운 사업의 한 축으로서 마땅히 참여하도록 했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날 배포된 자료 역시 미흡했다. 그동안 서울시가 내놓은 뉴타운 관련 자료를 종합하는데 그쳤다. 주제 발표자들이 마련한 자료는 ‘지금의 주택개발을 주거재생으로 바꾸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택철학이나 지금까지 서울시가 발표한 제도개선안에 머물렀다. 지정토론에 참석할 예정이던 인사들 명단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비대위 관계자는 “좌장 토론자로 지정된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등은 오래전부터 박 시장과 뜻을 같이했던 사람”이라며 “이해관계자의 주요한 축이 빠진 이번 자리는 애초부터 결함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앞으로 설명회나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경환 기자 kh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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