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학벌 넘으려 수년째 스펙쌓기 그리고 낙방
-대인기피증…우울증…불면증
-그래도 마인드컨트롤이 중요
-반복되는 실수, 불합격에 자신감 잃는 게 진짜 패배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1 지난해 2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한 A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말했다. 최근 몇 달 새 수십 군데의 회사에 지원했지만 면접은커녕 서류 통과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뭄에 콩 나듯 기회를 부여받은 면접에서는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하고 버벅거린 탓에 언감생심 합격은 꿈도 못 꿨다. 불합격 통보가 연달아 날아오자 그만 지쳐버렸다. A씨는 "면접 기회를 얻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라면서 "계속되는 실패에 자신감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2 졸업을 앞둔 여대생 윤모(27)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다름 아닌 재물손괴 혐의다.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술을 마시고 홧김에 고급 승용차 수십대를 돌멩이로 긁어 훼손한 것. 경찰조사에서 취업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애꿎은 차에 화풀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고민하다 술을 마신 뒤 울컥하는 마음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3월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만9000명 늘었다. 실업률도 3.7%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0.6%p 내려갔다. 그러나 15~29세 청년 실업률은 8.3%로 여전히 전체 실업률의 두 배를 웃돌았다.
심각한 취업난이 계속되자 구직자들의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좁디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너도나도 스펙 쌓기에 몰두하다보니 '스펙 스트레스'가 쌓인 것. '될 사람은 된다'고 면접 한번 보기 힘든 구직자가 있는 반면 여러 곳에 합격해 원하는 곳을 골라가는 이도 있다. 이른바 '취업 양극화'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구직자들은 좌절한다. 이런 좌절감은 또다시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취업 스트레스'는 괴로워=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구직자들은 수년째 스펙 쌓기에 매달려왔다. 취업 경쟁에서 상대방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오히려 스펙을 쌓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2년째 취업을 준비중인 B씨는 요새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답답하다. 입사지원을 하느라 새벽까지 컴퓨터에 매달린 탓인지 가끔씩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B씨는 "취업준비로 식사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다"면서 "스트레스 때문인지 속이 쓰리고 답답하기까지 하다"고 토로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구직자 8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6.8%가 스펙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중 26.3%는 전문 상담이 필요한 위험한 상태였다. 이유는 다양했다. '지원 자격에 못 미치는 스펙을 가졌다'(60.1%, 복수응답)거나 '고스펙 보유자가 너무 많다'(49.9%), '기업에서 요구하는 스펙이 점점 늘고 있다'(40.9%), '스펙을 쌓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35.5%), '자괴감을 크게 느낀다'(31%) 등이다.
스펙 스트레스로 인해 64.1%(복수응답)는 자신감을 상실했다고 답했다. 이 밖에 구직의욕 저하, 우울증, 불면증 등 수면장애, 음주·흡연량 증가, 소화불량, 대인 기피증 등의 증상을 겪고 있었다.
취업 양극화도 구직자들에겐 스트레스의 원인 중 하나다. 높은 자격조건, 인맥, 학벌 등 스펙과 관련된 이유가 대다수였다. 특히 높은 자격조건에 지원조차 할 수 없다거나 여러 곳에 합격해 입사 기업을 골라가는 사람을 볼 때 극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인이 구직자 19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임민욱 사람인 홍보팀장은 "구직자들의 눈높이가 높고 스펙만으로 인재를 평가하는 채용 기준 등이 복합 작용해 취업시장의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스펙이 곧 능력이라는 생각과 대기업 입사를 성공의 잣대로 삼는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양극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취업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까= 구직활동을 하는 한 현실적으로 취업 스트레스를 피할 길은 없다. 전문가들은 자신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스스로 찾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다면 취업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말처럼 쉽지 않을 테지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노력해보자.
우선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구직활동을 하다보면 남들의 취업 소식에 괜스레 신경이 곤두서지만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취업 스트레스는 배로 늘어난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취업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한다면 성취감은 물론 취업 확률도 높일 수 있다.
마인드 컨트롤도 중요하다. 반복되는 면접 실수나 불합격에도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불합격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책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는 늘고 자신감을 떨어져 의욕을 상실하게 될 뿐이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가끔씩은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구직활동 중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공부만 할 필요는 없다. 취업에 실패했다고 의기소침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때때로 취업 자극을 받거나 자신감을 북돋아줄 선배나 친구 등을 만나 휴식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마음의 안정 뿐만 아니라 취업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도 뒤따를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불합격 경험이 많아지면 자신감을 잃기 쉽지만 실패에서 부족한 점을 찾고 개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삼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며 "취업 스트레스를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해소법을 찾는 한편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야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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