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논란이 되고 있는 파이시티 비리의 초점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로 쏠리고 있다. 30일 서울시는 파이시티 인허가에 관여한 당시 도시계획위원회와 건축위원회의 명단 및 회의록을 공개했다.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회의록과 명단을 분리해 공개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 다수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시장 등이 결정하는 도시관리계획을 심의·자문하는 기구다. 도시계획시설 변경이나 용도구역, 정비구역의 지정에 관한 결정 등의 심의를 담당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파이시티 역시 유통업무설비로 도시계획시설에 속한다.
회의는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서울시 주관 부서나 시장 등이 매월 첫째, 셋째주 수요일에 열리는 도시계획위원회에 안건을 올리고 심의·자문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지금은 행정2부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공무원 4명과 서울시의원 5명, 민간 전문가 21명 등 30명으로 이뤄졌다. 행정2부시장이 위원장인데다 도시계획국장이 간사로서 회의를 주관하다보니 논의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이시티 세부시설 변경을 허용했던 2005년 당시 도시계획위원장은 장석효 현 한국도로공사 사장, 도시계획국장은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행정2부시장으로 지낸 김영걸씨다. 게다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당시 고려대 교수),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당시 언론인),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당시 변호사) 등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포함됐다. 특히 이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원제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당시 위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임기말 승인한 세부시설 변경안이 손쉽게 통과된 배경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비리는 당시 도계위가 밀실행정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전원합의제로 운영되지만 그동안 위원회의 설치, 구성 및 회의록 공개는 최소한의 사항만을 규정하고 있었다. 공개하는 경우에도 시민들의 정보공개청구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개방되는 등 ‘비공개’ 원칙하에 운영돼 감시의 눈길을 비껴간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수의 비상임 전문가들이 한달에 한두 번 모여 안건을 검토하다보니 책임을 묻기 힘든 시스템도 비리를 키웠다. 실제 당시 회의에 참석한 다수의 위원들은 “회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심의에 불성실했던 태도를 보였다.
반면 위원 명단이 공개되면 되레 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이해관계자들의 개입이 의심된다’며 정보공개를 청구한 사안에 대해 서울시가 줄곧 ‘비공개’ 입장을 내놨던 이유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개대상 정보에 포함돼 있는 이름·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도 도시계획위원회의 회의록은 1년의 범위에서 공개 요청이 있는 경우 공개하도록 했지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 식별 정보에 관한 부분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단서가 달려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명단 비공개가 로비를 막기보다는 투명한 행정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서울시가 파이시티와 관련된 명단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앞서 박 시장은 취임 초기 서울시의회 정례회의에서 “도시계획위원은 굉장한 로비의 대상으로 위원의 선정과 역할에 엄정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압력과 로비에 흔들리지 않도록 독립성 추진하고 감사관실을 투명하게 개편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박 시장은 도시계획위원회 명단을 홈페이지에 실시간 공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6개월이 소요되던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 공개기간도 30일로 대폭 단축했다.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내용이 신청에 의한 열람의 방법으로 공개됐던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개선한 조치다.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도시재정비위원회나 건축물의 용도제한 등의 심의를 위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등 시민 재산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위원회의 명단 및 회의록도 함께 공개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이같는 분위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투명 행정을 이뤄내겠다는게 박 시장의 기본 철학으로 도계위 뿐 아니라 다른 회의 사안들도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여기에 명단 공개에 따른 위원들에 대한 사전로비 가능성과 위원회 결정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등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 보완책을 마련 중에 있다”고 밝혔다.
배경환 기자 khba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