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징글징글'한 가족의 이야기는 한국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텍스트다. 예전보다는 많이 덜해졌지만 한국이 그 어떤 것보다 피로 얽힌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일민족' 국가인 탓이다.
한국 연극계의 대모 윤석화가 '레테의 연가'(1987) 이후 2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봄, 눈'(감독 김태균, 26일 개봉)도 가족 영화의 전형에 해당된다. 엄마와의 이별을 통해 가족의 화해와 재결합을 그리는 '봄, 눈'은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온 엄마 순옥(윤석화 분)이 말기암 시한부 판정을 받고 가족들과 이별하며 맞는 마지막 봄날 이야기다. 이미 줄거리에서 끝났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관객들을 자극할 준비를 확실하게 마쳤다.
구성은 평이하다. '봄, 눈'은 극 초반 무심하고 무능한 남편(이경영 분)과 제 살기에 바빠 가족은 뒷전인 자식들의 모습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날마다 새벽 첫차를 타고 직장으로 향하는 순옥의 고된 일상이 여기에 겹쳐진다. 당연한 이야기다. 순옥의 암 선고 이후 가족들의 삶과 태도가 완벽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더 극적으로 묘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실제 경험담에서 이야기를 끌어왔다는 '봄, 눈'은 다소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공법 스토리텔링을 택한다. 그 누구보다 씩씩했던 엄마가 점차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약, 중, 강'의 점층으로 펼쳐놓고 있는 것. 명실공히 '원 톱'인 윤석화의 비중은 '봄, 눈'의 전부다. 극 중 기쁨과 슬픔, 회한과 안타까움 등 다양한 감정 표현을 자유자재로 시도하는 윤석화는 '연극계의 대모'라는 닉네임을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입증한다. 빙긋 미소 짓다가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순옥의 얼굴에서 대배우의 연륜을 고스란히 찾아낼 수 있다.
물론 아쉬운 부분은 있다. 내러티브와 장면, 연기, 음악, 편집 등 '봄, 눈'은 극 중 모든 요소들이 과도하게 질러만 댄다. 사실, 모든 것을 다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굳이 직접적 묘사 없이도 죽음과 이별·사랑의 이야기를 최대치로 풀어낸 한석규ㆍ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릴 것. 하지만 괜찮다. '봄, 눈'은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어머니를 떠올리게끔 한다. '봄, 눈'의 미덕은 '딱' 그거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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