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이영호 전 고용비서관 사전구속영장 청구했으나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청와대 증거인멸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행보가 속도를 더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검찰 안팎의 시선이 불안하다. 청와대 비서관들의 조직적인 개입 정황 폭로가 이어지는 가운데 현 법무부 수장인 권재진 장관 역시 당시 민정수석으로 근무해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0년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에서 검찰은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 장진수 전 공직윤리비서관실 주무관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정황을 포착하고도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2년여만인 지난달 30일에서야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최 전 행정관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해 오는 3일 구속여부가 갈릴 예정이다.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의 일자리를 알선해 준 것으로 확인됐다. 장 비서관은 기자회견에서 “인사비서관실에 장진수의 취업을 부탁한 것은 사실”이라며 호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불법사찰 관여자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일개 주무관의 취업 알선에 청와대 비서관이 직접 나섰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이 뒤따르고 있다.
장 전 주무관의 변호인인 이재화 변호사는 “직권남용을 하면서까지 장 전 주무관의 취업알선을 해준 것은 회유를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라며 “장석명 비서관의 발언은 청와대가 증거인멸에 개입된 사실에 대한 입막음용으로 장진수를 회유하였을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9일 KBS 새노조가 공개한 불법사찰 문건 2619건엔 BH(청와대) 하명 사건 중 ‘민정’으로 표시된 부분도 포함돼 있다. 당시 민정수석실이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과정에 개입했거나 최소한 알고서도 묵인했을 정황이 불거진 상황이다.
2010년 수사 당시 검찰이 증거인멸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앙지검 특별수사팀(박윤해 부장검사)의 행보는 가파르다. 수사 착수와 동시에 폭로의 중심인 장진수 전 주무관을 20일, 21일 소환조사한 검찰은 이틀뒤인 23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의 자택,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어 28일 장 전 주무관의 직속 상관이던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의 집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주미 대사관에 근무하던 최종석 전 행정관을 29일 불러 조사한 뒤 이튿날 곧장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31일 불러 조사한 이영호 전 비서관에 대해서도 1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한 행보를 보이는 와중에도 불안한 시선이 이어지는 것은 수사 착수 초기가 아닌 소환조사 이후 폭로행보를 이어가던 장진수 전 주무관에 대한 압수수색 때문이다. 수사에 협조적인 제보자에 대해 자료제출 요구가 아닌 압수수색을 택한 것은 장 전 주무관의 폭로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미 폭로로 개입 정황이 불거진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로 수사를 조기종결하고 결국 불법사찰을 지시한 ‘윗선’ 수사로는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 전 주무관의 변호인인 이재화 변호사는 “강제수사가 아닌 임의수사만 하겠다고 밝힌 검찰이 VIP(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녹취파일을 공개하자 바로 다음날 압수수색을 했다”면서 “장진수 주무관의 추가폭로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또 “검찰 압수 물품에 현재 사용 중인 휴대폰과 명합첩이 포함된 것은 (불법사찰이나 증거인멸이 아닌)폭로 배경을 수사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영호 전 비서관, 최종석 전 행정관 등 핵심 관계자들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증거인멸 지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윗선에 대해서 굳게 입을 다문 상황에서 검찰 수사가 어느 선까지 이뤄질지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수사팀 관계자가 재수사 착수 초기부터 “증거인멸 혐의를 수사한다. 필요하다면 수사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고 제한적인 입장을 비추는 대목도 미심쩍다. 검찰 안팎에선 부실수사 논란 끝에 2년여만에 재수사에 돌입하고서도 불법사찰의 지시·보고자를 확인하지 않은 채 증거인멸 작업 관여자들에 대한 조사로 막을 내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다.
당시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장관이 법무부의 수장으로 머무는 한 검찰 수사에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법무부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입장 표명에 나설 경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해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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