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아무도 모르게 전국을 돌며 불합리한 중소기업 규제를 개선하는 이가 있다. 일을 잘해 성과를 많이 내도 외부에 알리는 건 금물이다. 22일 취임 1주년을 맞은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이다. 그는 지난 1년간 전국에 숨어 있는 문제점을 찾아 각지를 돌았다.
이날 서울 종로 옴부즈만실에서 만난 김 옴부즈만은 "우리는 잘못되거나 개선될 필요가 있는 규제를 지적하는 곳인데 누가 그런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겠느냐"며 "우리는 티를 내서도 안 되고 티를 낼 수도 없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0년 이민화 초대 옴부즈만이 중도 사퇴한 뒤 이듬해 취임했다. 이 옴부즈만이 기관의 독립성 문제를 공론화한 상태인 데다 옴부즈만 자리가 4개월간 공석이었던 터라 상황은 뒤숭숭했다. 김 옴부즈만 역시 처음엔 적응이 어려웠다고 했다.
"우리가 규제 개선을 한다고는 하는데 비슷한 일을 하는 부서가 정부가 많다. 처음 3개월간은 우리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뭔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그가 장고 끝에 내놓은 답은 '현장'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자고 결심한 것이다. 특히 기존에 정부 기관들이 차마 갈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열악하거나 먼 지역 위주로 가기로 했다.
"현장에서 평생 중소기업을 해온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어려워하는 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문경, 태백 등 한 번도 정부 인사들이 찾지 않은 곳들 위주로 갔다."
그가 마주한 이들은 정부에 규제 개선 건의를 할 수 있는지조차 몰랐을 정도로 본업에만 충실했던 기업인들이다. 차관급인 김 옴부즈만에게 직접 문제점을 털어놓은 이들은 "우리 얘기를 들어줘 고맙다"며 감격해했다.
김 옴부즈만은 "내가 다닌다고 해서 일이 모두 해결되진 않겠지만 어려운 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참석자들이 위로를 받더라"고 말했다.
그가 지난 1년간 각종 간담회에서 직접 전해들은 규제 애로사항만 578건에 달한다. 옴부즈만실이 1년 동안 받은 규제 및 애로가 955건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을 현장에서 발굴한 셈이다.
옴부즈만의 역할은 조선시대 암행어사와도 같다. 외부 노출 없이 전국에서 문제점을 해결한다. 다른 점은 암행어사의 권력을 상징하는 마패가 옴부즈만에게는 없다는 점이다. 김 옴부즈만은 옴부즈만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아무 권한이 없는 현재 옴부즈만 구조로는 일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유럽 옴부즈만은 면책특권과 기소권이 있고, 미국 옴부즈만 역시 기소권이 있다. 잘못된 규제를 없애고 개선을 요구하려면 지금보다 힘이 필요하다."
올해 그는 각종 인증제도 개선에 매진할 계획이다. 현재 인증제도는 지나치게 비대해 중소기업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현장에서 각종 인증제도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많이 듣는다"며 "범정부 차원에서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방안을 건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중소기업기본법에 의거 중소기업청장이 추천하고 국무총리가 위촉한다. 주요 직무는 불합리한 규제에 따른 고충처리, 관계기관에 규제 개선건의, 규제의 조사ㆍ분석ㆍ평가 등이다.
이승종 기자 hana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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