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중국 중앙정부가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 전 서기의 실각 이후 충칭에 대한 장악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1일 보도했다. 아울러 중국 내에서 좌파의 기수 역할을 했던 보시라이가 권력지형도에서 사라지면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서의 이념 간극을 줄이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보시라이의 실각으로도 보시라이가 주장했던 분배에 대한 강조, 혁명시대로의 복귀 등의 주장이 약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왜냐하면 현재 중국 지도부로서도 중국 공산당이 표방해왔던 전통적인 가치를 부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경제에서의 국가 역할을 강조한 그의 입장이 국영재산의 민영화를 우려하는 이들에게서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보시라이가 충칭 총서기에 전격적으로 해임되면서, 중국 내에서는 좌우파간의 대립하고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파벌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이 이끄는 태자당,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상하이방 사이의 권력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잇달아 제기됐다. 보시라이의 실각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올 가을로 예정되어 있는 중국 지도부 개편을 둘러싸고 각 진영간의 권력투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뉴요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간) 보시라이가 왕뤼진(王立軍) 충칭시 부시장을 전 공안부장을 중국 공산당에 알리지 않고 해임 한 것과 가족에 대한 부패 수사를 가로 막은 것과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으며, 조사 내용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들 사이에서 회람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보시라이는 왕뤼진이 이끄는 공안부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부패 수사에 나선 것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NYT는 이번 보시라이의 실각이 2006년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당서기나 1995년 천시퉁(陳希同) 베이징 시장의 몰락과 비슷한 과정을 경유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양쪽 모두 부패를 이유로 체포돼 몰락하는 과정을 겼었으나, 몰락의 이면에는 권력 투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신화통신은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 부장은 사익을 추구하는 공산당원을 경고하면서 “배금주의와 향락주의에 맞설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보시라이 역시 천량위나 천시퉁과 비슷한 경로를 거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통상 중국은 부패 관료 문제에 대해 시스템의 문제로 해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성적 추문들을 거론한다. 보시라이 역시 최종적으로 중국 정치권에서 버려질 경우 개인의 비리 문제 및 성적 추문 등으로 알려져 가능성이 높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보시라이가 쌍규(雙規) 처분을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쌍규는 중국 공산당 기율검사위원회가 당원에 한해 무제한의 수사를 벌일 수 있는 조치로, 법적 근거없이 중국 공산당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용의자를 납치하다시피 체포해 정식으로 조사를 진행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억류할 수 있다. 쌍규는 재판 없이도 피의자를 6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으며, 가족에게 연락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 역시 부여하지 않는다. 산케이신문 보도대로 보시라이가 쌍규 처분을 받았고, 여기서 혐의가 인정될 경우 사법부의 공식 판결이 없더라도 사실상 유죄로 여겨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 실각과 관련해 중국 인터넷 내에서도 다양한 소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몇몇 네티즌들은 삼엄해진 베이징의 경비를 언급하며 후진타오 국가 주석에 맞서는 쿠데타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 때문에 쿠데타(내란) 등의 단어들은 웨이보 검색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19일 오후 한국에서도 ‘중국내란’이라는 단어가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몇몇 언론이 중국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는 파룬궁 소유의 대기원시보의 보도를 인용해 사실 확인 없이 중국이 내전 상황에 직면에 있다는 보도가 쏟아낸 것이다. 해당 뉴스는 중국을 포함한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못 미쳤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마치 실제 내전이 일촉즉발인 상황처럼 받아들여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후진타오 국가 주석과 저우융캉(周永康) 정법위 서기가 무장경찰력을 동원해 반대파를 체포하고 있으며, 중국 지도부가 머무는 중난하이(中南海)는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요외신들은 전혀 다루지 않았으며, 현지에 있는 소식통들 역시 그런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해당 보도 뒤에도 중국 측에서 어떠한 이상징후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대기원시보에 몇몇 한국 주요 언론들이 낚인 셈이다.
보시라이 후임으로 임명된 장더장(張德江) 충칭 총서기는 보시라이 흔적을 지우며, 이 지역일대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의 경우 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모여서 보시라이 전 서기가 부르기를 권장했던 홍가(紅歌·공산당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를 지지하며, 경제에서의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고 마오쩌둥(毛澤東) 정신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좌파’들은 이번 보시라이의 실각으로 당분간 수면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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