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병진 토크 콘서트>를 매회 빼놓지 않고 시청해왔습니다. 그러나 지지난 주 주병진 씨가 “연예계의 전설의 모임 ‘늘 푸른 모임’을 아십니까?”로 서두를 열었을 때, 그 즉시 채널을 돌리고 싶었어요. 왜냐고요? 아는 정도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이 들어왔거든요. 수년간 그 모임 소속 연예인들이 토크쇼에 출연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려준 얘기라서 말이죠. 이건 뭐 기업 브리핑 상황도 아니고 시청자들이 왜 모임 결성 계기며 회원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벌어졌던 에피소드들, 총무를 맡은 이성미 씨가 모임의 구심점이자 실세라는 사실을 듣고 또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새로운 내용이 보태지기라도 하면 말을 안 하겠어요. 보는 이들은 아랑곳 않은 채 서로 박장대소하며 한 말 또 하고 또 하니 갑갑할 밖에요.
그래도 채널을 돌리지 않았던 건 사유리 씨가 주병진 씨를 돕기 위해 초대되었기 때문이었어요. 아마 7회였을 거예요. 붉은 소파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한 사진가 호르스트 바커바르트의 사진집에서 모티브를 따온 ‘붉은 소파’가 많은 사람들과 다양하고 진솔한 얘기를 나누고자 부산의 겨울바다를 찾던 날, 그 바람 많이 불고 춥던 날 바로 사유리 씨가 나왔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유리 씨로 인해 주병진 씨가 고생 깨나 했는데요. 하지만 빤한 그림이 아닌 예상치 못한 전개들이 줄줄이 이어져 신기해하며 지켜봤던 기억이 나요. 천진한 사유리 씨가 감히 주병진 씨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잖아요. 어지간한 MC들이라면 바짝 긴장할 대선배지만 사유리 씨에게는 주병진 씨가 자신의 아버지를 닮았다는 김구라 씨와 별 다름 없어 보였나 봅니다. 사유리 씨의 어이없는 요구에 선선히 응해주는 주병진 씨의 모습이 의외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보기 좋았어요. 신선한 조합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고정일 줄 알았던 사유리 씨의 출연이 단발에 그치는 바람에 아쉬웠습니다. 아, 낭만 콘서트 적에도 김태훈, 장동민 씨와 함께 출연을 하긴 했네요.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은 초대손님
어쨌든 사유리 씨의 등장을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늘 푸른 모임’ 멤버들이 나타나는 순간 기대감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어요. 그 모임의 폐쇄성을 알 리 없는 사유리 씨가 순진무구하게도 “오늘 동아리 멤버 되고 싶어서 여기 왔어요”라고 하지 뭐에요. 그런데 친하고 싶다고 속없이 하는 소리에 이경실 씨가 “그건 안 되지”하며 정색을 하더군요. 순간 사유리 씨도 민망했겠지만 보는 저도 참 낯이 뜨겁더라고요. 모양새로야 늘 푸른 모임 멤버들이 초대 손님이라지만 실제로는 멤버들 사이에 사유리 씨 혼자 껴있는 형국이잖아요. 가족이 모인 자리에 외국인을 하나 불러 놓고는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하는 사람에게 손사래를 치며 그건 절대 안 된다고 거부하는 셈이지 뭐에요.
그처럼 시작부터 선을 확실히 긋더니만 역시나 방송 내내 사유리 씨는 병풍이자 그림자 신세였습니다. 아무리 말을 해봤자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죠. 수시로 던져진 사유리 씨의 멘트들은 대부분 혼잣말이 되어 허공에 산산이 흩어질 뿐이었어요. 그나마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유리 씨니까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었다고 봐요. 웬만한 신인이었다면 아마 군내가 나도록 입을 닫고 있어야 했을 걸요. 끼어들 여지가 도무지 없는 자리, 대체 사유리 씨는 왜 부른 걸까요? 말이 나온 김에 얘긴데 생애 최고로 당황스러웠을 레크리에이션 진행자, 그 분은 또 왜 불렀대요. 짐작컨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대중의 심리를 아는 제작진 측에서 임의로 섭외했지 싶어요. 만약 주병진 씨가 초대했다면 그처럼 사유리 씨를 마냥 방치하지는 않았겠지요. 제가 좀 의아하게 여겼던 건 이경실 씨였습니다. MBC <세바퀴>며 SBS <강심장>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늘 신인들에 대한 배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던 이경실 씨가 이 자리에서만큼은 너무나 낯선 얼굴이었거든요. 의논 없이 사유리 씨를 끼워 넣은 제작진에 대한 거부감의 발로였을까요? 다행히 살가운 이경애 씨가 있어 카메라 밖에서는 여러모로 챙겨줬지 싶지만 그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에 공주 타입의 연예인이었다면 방송이고 뭐고 눈물 글썽이며 당장에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난리를 피웠을 겁니다.
사유리 씨, 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요
그래서 지난 주 방송된 2부 때는 혹시 제가 괜한 곡해를 한 건 아닌가 하고 더 유심히 지켜봤어요.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마치 내 자식에게 누가 설움을 주는지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나물에 그 타령이 계속되다가 마지막 부분에 끝내 정점을 찍고 말더군요. 기억나죠? 주병진 씨가 준비한 선물을 내왔을 때 말이에요. 반색을 하며 좋아했지만 당연히 사유리 씨의 몫은 없었어요. 하나씩 선물이 줄어들 때의 그 민망함이라니. 풀어본 결과 뭐 대단한 선물은 아니었지만,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요? 그 왕따가 된 것 같은 머쓱함은 평생 잊지 못하지 싶어요. 사유리 씨, 타산지석이라는 속담이 있어요.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고요. 남의 잘못에서 깨달음을 얻으면 되는 거예요. 그냥 우리 좋은 공부한 것으로 여기기로 합시다. 서럽지 않았다고요? 어쩌면 마음 넓은 사유리 씨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서 사유리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네가 뭔데’가 아니라 ‘내가 뭔데’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했죠? 그 말, 그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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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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