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레흐 바웬사. 폴란드 최초의 자유노조운동으로 노벨상을 받은 그는 1990년 12월 초대 직선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1995년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정계에서 전격 은퇴했다. 바웬사는 곧바로 옛직장인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의 전기기사로 복직했다. 대통령에서 노동자로 돌아간 그의 모습은 전세계 노동운동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병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언론인에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정치에 발을 디뎠다. 참여정부에서는 홍보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일했다. 그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해 광주 서구의회 의원이 됐다.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 기초자치단체 의원이 된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념이나 정치색과는 무관하다. 그들의 정치철학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낮춘 때문이다.
김무성과 이동관. 그들도 이번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을 받지 못한데 강하게 반발했지만, 끝내 뜻을 접었다. 두 사람은 '백의종군', '밀알'이라는 표현으로 새누리당의 정권재창출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당에 대한 섭섭함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더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했다. 뒤를 이어 많은 친이(친이명박)계 인사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공천을 받지 못한 인물 가운데에는 소위 '그릇이 큰 인물'도 꽤 있다. 그들은 당분간 고난의 시간을 이겨야 한다. 절치부심(切齒腐心)이다. 이들이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보수진영이 결집해야 한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당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당원으로서 최선이기도 하다. 내 몸에 옷이 맞지 않는다는 불평을 늘어놓기에는 당 안팎의 상황이 급박한 것도 사실이다.
큰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갑갑한 노릇일테다. 하지만 모두가 국회의원을 하고 대통령을 할 수는 없다. 누구는 낮은 데서 일을 해야 하고, 그것에서 보람과 희망을 맛봐야 한다. 우리 정치가 한 발짝 나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낮은 곳을 향해 갈 수 있는 정치인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큰 꿈을 꿨던 사람일수록 이같은 선택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바웬사는 재선에 실패했고, 이병완은 지난 정권의 폐족이었다. 그들의 아픔이 공천에서 탈락한 이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몸을 낮추면서 대중은 그들을 승리자로 기억한다. 새누리당에도 바웬사, 이병완이 필요하다. 그래야 감동이 생긴다.
조영주 정치경제부 차장 yj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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