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선거를 앞두고 재벌개혁이니 해체니 하는 이야기가 한창이다. 재벌도 아니면서 이 논의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회사가 있는데 바로 유한양행이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짚어본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사후 전 재산을 장학재단에 기증했다. 그러면서 후손 누구도 재단 운영에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기업에서 나온 이윤은 상속의 대상이 아니라 원주인인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꼭 이런 식으로 해야 존경받는 회사냐며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유한양행이 추앙을 받을수록 사회는 재벌에게 '당신도 무엇인가를 내놓아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제 몫만 잘 한다면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고용창출ㆍ경제발전 기여ㆍ소비자 행복증진 등 측면에서 우리 재벌들도 존경받을 만한 구석이 많다.
그렇다고 유한양행을 깎아내릴 이유도 없다. 유한양행이 매출액 6000억원에 불과한 복제약 회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현주소와 유 박사의 기업가 정신에 대한 평가는 별개 사안이다. 유한양행은 제약업계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다. 유 박사의 결정이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존경을 보내는 대상은 유한양행이라는 회사가 아니라 유 박사 혹은 그의 기업관이다. 그래서 복제약이나 만드는 유한양행은 존경하지 못하겠다는 주장도 언뜻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이는 유 박사의 기업관을 폄하하거나 그 기업관이 유한양행의 발전을 막은 잘못된 판단인 것처럼 비치게 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물리적 크기가 커야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는 그릇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기에 더 주의해야 한다.
70년대까지 유한양행은 여느 재벌 부럽지 않은 큰 회사였다. 유 박사는 기업을 잘 일구고 그 열매를 사적으로 향유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유 박사에게 '흔쾌히' 존경심을 보낸다.
재벌의 훌륭한 업적이 평가를 받지 못하는 건 총수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내놓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저질러 온 과오와 부인할 수 없는 부작용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재벌회사에 취직하기를 원하지만 그 회사의 총수를 '흔쾌히' 존경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조그마한 복제약 회사'라는 비아냥이 유한양행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을 저버리게 하지는 못한다. 재벌이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했다고 강조한다해서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도 아니다.
한 해 수만 개씩 일자리를 창출하는 글로벌 기업보다 유한양행이 더 존경받는 현실은 분명 어색하다. 하지만 복제약 회사 말고는 딱히 존경할 만한 기업이 없는 현실도 결국 재벌 스스로 만든 게 아니던가.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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