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하는 충무로산책
남이야 뭐라든 넓게 보면 글로 먹고사는 입장이고 보니 최근의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 신드롬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4개 종합편성채널(종편)까지 가세해 총 7개 TV채널이 드라마를 쏟아내는 작금의 현실에서 '해품달'은 가히 경이적이다.(지난 1일 기준 자체 시청률이 47%라고 한다)
나도 집사람과 나란히 앉아 매주 그 드라마를 본다. 처음부터 본 건 아니다.
대한민국 최대 파워 소비층인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늘 그렇듯 '꽃미남' 앞세운 막장 드라마쯤으로 치부했던 것이다.(매일 아줌마가 해주는 밥 먹고, 또 매일은 아니지만 아줌마의 기호에 맞춰 글 쓰고 기사 선택하는 주제에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집에 있는 아줌마 기분에 맞추느라 옆에 달라붙어 '해품달'을 보다가 그만 묘한 매력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 매력이 뭔지 깊이 고민해보진 못했지만(고민한다고 답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중독성이 강한 건 분명해 보였다.
"당신도 저런 소설 하나 써보셔. 돈 안되는 글만 쓰지 말고."
"작가가 누군데? 스토리로 볼 때 본격 역사소설 작가가 쓴 건 아닌 거 같고, 방송작가가 쓴 거 아닌가? 남자 말고 여자."
"이거 소설가가 쓴 거야. 소설도 엄청 팔리는 중이고. 근데 작가에 대해선 알려진 게 하나도 없다네. 완전 '비밀주의'인 거지."
이렇게 해서 드라마에 이어 작가에게까지 관심이 확산된 것인데 주말에 그 궁금증이 일부 풀렸다. 중앙일보가 3일(토요일) 그 작가와의 전화 인터뷰를 기사로 내보낸 것이다.
'식구들도 내가 작가인 줄 몰라요'라는 제목에 '언론 첫 인터뷰-얼굴 없는 작가 고집하는 이유'란 부제가 붙어 있다.
기사는 그런대로 재밌었다.(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란 점에서 드라마보다 더 생생하고 흥미진진했다) 작가가 여성인 것도 확인됐다.(기사에 "수화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고 돼 있다)
"원래 모르는 번호는 안 받는데 기다리던 전화가 있어 엉겁결에 받는 바람에 인터뷰를 하게 됐다"는 작가의 회한(?)에 찬 고백도 신선했다.
"신문에 이름이 나는 게 싫으니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공감이 간다.(역시 이 땅의 상식 있는 이들은 신문에 이름 나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압권은 그 다음이다.
"유명세를 타면 글 쓰는 게 힘들어진다…소설의 인기는 드라마의 후광 효과다…드라마가 끝나면 잊혀질 거다…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기자와 인터뷰하지 않을 뿐 독자와는 인터뷰했다…나는 문학작가가 아니라 로맨스 작가다" 등등의 아주 '쿨'한 멘트 말이다.
궁궐을 무대로 한 그렇고 그런 3류 러브스토리에 그쳤다면 47%는 불가능했을 것이다.(대한민국 아줌마의 콘텐츠 감식안은 이미 글로벌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럼 드라마 '해품달'의 성공요인은 뭘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지만(그 답을 안다면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또는 각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왜 고민하겠는가?) 내 생각에는 '진정성'이 아닐까 싶다.
'피붙이'(혈연)와 '사랑'이란 가치 중립적 딜레마('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대표되는)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올바름', 달리 말하면 '정의'에 대한 도전과 좌절의 여적 말이다.
어쨌든 드라마는 이번 주에 끝난다고 하니 이제 책을 사서 시장점유율이 됐건 지지율이 됐건 47%의 비밀이 뭔지 더 고민해볼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 책을 주문했다.
박종인 국장대우 겸 금융부장 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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