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기름값 고공행진 속에 유류세 인하 요구가 거세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 위로 올라가야 검토할 수 있다며 버티지만,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지원사격'에 나선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만약의 경우 유류세를 낮추더라도 경차와 저소득층의 생계형 차량, 장애인의 이동용 차량에만 혜택을 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해묵은 유류세 인하 논란에 불을 댕긴 건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다. 홍 장관은 23일 취임 100일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유가가 적정 단계가 되면 유류세 인하 등 다양한 수단을 협의하겠다"고 했다. 다만 "현재는 검토하지 않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 장관의 발언 이후 주무부처에는 문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류세 인하는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응계획)에 따를 것"이라며 당장은 인하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유류세 인하 주장이 나오는 건 그만큼 기름값이 올라서다. 22일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전일보다 배럴당 1.73달러 비싼 119.42달러에 거래됐다. 국제 유가의 오름세는 국내 기름값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을 보면, 23일 오후 8시 현재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전일보다 2.46원 오른 리터당 1994.04원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10월 31일 기록한 최고가(1993.17원)를 넘어섰다. 서울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 역시 2074.66원으로 하루만에 최고가 기록을 갈아 치웠다.
유류세 인하 압력에 재정부도 고민이 깊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2008년 유류세를 잠깐 낮춘 일이 있지만, 기름값이 계속 올라 세수만 축내고 체감 효과도 낮았다"며 "우리 유류세는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닌데다 전세계가 탄소세를 물리는 등 에너지 세율을 높이는 추세여서 지금은 유류세를 손 댈 상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국제유가가 크게 올랐고, 여기 영향을 주는 미국과 이란의 대치 상황도 3월(이란 총선)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여 정부도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 위로 올라가면 인하 여부를 검토하되 이 경우에도 경차와 저소득층의 생계형 차량, 장애인의 이동용 차량만 세금을 낮춰주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도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박주선 민주통합당 의원은 "미국의 이란 제재 등으로 국제유가가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서민과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졌다"며 "유류세를 10%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시민모임도 "유류세를 낮춰 주유소 판매 가격을 내리라"고 거들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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