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최근 K-POP과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 한류의 영향력이 세계 곳곳에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 콘텐츠시장이 괄목할만한 성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콘텐츠 산업의 성장의 배경엔 무엇보다 콘텐츠 관련 5개 기관이 통합되면서 체계적이고 일관된 정책과 사업을 추진해온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기여도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와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온 이재웅(59)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만나 콘텐츠세상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초 큰 화제가 된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방영권이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13개국에 판매됐고, 방영권으로만 약 4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소녀시대, 카라 등 일본 음반시장에서 성공한 우리나라 걸그룹들은 일본 오리콘 매출 집계 결과, 2010년 대비 2011년에는 매출이 5배나 상승해 한국 콘텐츠의 수익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밖에 뿌까, 뽀로로, 마당에 나온 암탉 등 한국의 정서가 담긴 캐릭터와 스토리가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그 곳에 재미와 감동을 불어넣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콘텐츠로 우뚝 성장했다.
이재웅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의 재임 기간(2009년 5월~2012년 1월)은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가장 활발하게 세계무대에 진출한 시기와 일치한다. 경제적 성과도 한류의 높아진 위상만큼이나 컸다. 지난 5년간(2007~2011년) 문화콘텐츠 수출은 연평균 25.2%나 증가했다. 2007년 20억 달러를 밑돌던 우리나라 콘텐츠 수출액은 2010년경에는 30억 달러로 훌쩍 커졌고 지난해엔 수출이 전년대비 14%나 증가해 40억달러에 육박하는 38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한국게임산업진흥원, 문화콘텐츠센터,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의 디지털콘텐츠사업단 등 5개 개관이 통합돼 2009년 설립됐다. 이 전 원장은 통합된 콘텐츠진흥원의 초대 원장으로서 어떤 때보다, 또 어느 누구보다 콘텐츠 사업의 진흥에 대한 사명감을 더 많이 느꼈다.
이 전 원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스토리텔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분야였다. 그는 원장 재임 시절 상금 4억5000만원 규모의 스토리 공모대전을 제정해 한국의 작가, 스토리텔러들을 지원하며 재미와 감동이 어린 한국적인 콘텐츠들을 육성하는 일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신화창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스토리공모대전을 추진하면서 스토리창작센터를 개설했고 공모 대전에서 선정된 작품들을 완성하고 그것들을 실질적인 각 장르별로의 제작을 지원하는 일관된 논스톱지원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제 그 성과들은 곧 우리 일상 속에서 TV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게임 등의 여러 장르로 확산되면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콘텐츠 산업의 요체는 재미와 감동이죠. 우리는 이야기를 잘하는 재미있는 민족이고 한(恨)을 극복하며 감동을 만들 줄 아는 흥과 끼를 가진 민족입니다. 그것이 콘텐츠 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 원장은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뜰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보다 우리민족이 재미와 감동을 이야기로 엮을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봤다. 우리 민족의 끼와 창의성, 한글 등이 결합돼 재미와 감동이 요체인 창의산업에 다른 어떤 국가나 민족보다 우월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세계적인 IT기술 강국으로서 콘텐츠 산업에 시너지 효과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원장은 이제 우리 콘텐츠가 문화한류를 넘어 ‘경제한류’로 가야한다고 제안했다. 경제 한류는 말 그대로 한류가 경제적 효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말한다. 예컨대 최근 일본 백화점에 들어서고 있는 '한류상품관'이 대표적이다. 한류상품관에서는 한국상품만 진열되고 판매된다. 이란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우리 드라마 <주몽>이 방영되자 이란시장에서 우리나라 에어컨을 비롯한 가전제품 매출이 수직상승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가 가지는 경제적인 잠재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재작년 일본 경제성 보고서에서는 아시아시장에서 한국의 쿨(COOL)한 한류 때문에 일본의 가전제품과 자동차가 한국에 밀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그만큼 한류의 확산이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대한민국의 품격을 소리 없이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 원장은 경제한류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관심과 참여를 강조한다. “콘텐츠가 없는 산업은 이제 없을 수 없습니다. 똑같은 쌀을 팔더라도 거기엔 이야기, 재미와 감동이 들어가면 쌀의 부가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거죠. 자동차도 이제 성능만 가지고는 우위를 점하기 어렵습니다.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어떤 재미를 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콘텐츠가 가진 잠재력을 우리 기업인들이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전 원장은 미래 리더들의 조건도 스토리텔링에 있다고 거듭 주장한다. “앞으로 경영자는 스토리텔링을 해야 하고, 스토리 경영기법을 알아야 됩니다. 정주영 회장을 보세요. 영국에 조선소 건립을 위한 돈을 빌리러 갈 때 달랑 500원짜리 한 장 들고 갔답니다. 거기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자, 봐라 우리가 이걸 최초로 만든 나라다’라고 했다는 거죠. 조선소를 어떻게 짓고 기술을 어떻게 하겠단 이야기는 안했습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리더가 재미와 감동으로 성과를 거둔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전 원장은 지난 1월 11일 콘텐츠진흥원장직을 사임했다. 콘텐츠 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고민을 하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와 관련해 행정, 학계, 입법 등의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하며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관련법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두루 활용해 문화콘텐츠업계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특히 콘텐츠진흥원장 시절 쌓아온 중국정부의 문화콘텐츠 인맥과 네트워크를 적극 확용해 한·중기업간 포럼을 구성하고 한국합작공동제작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는 그는 오는 4월11일 총선을 겨냥, 고향이자 지역구인 부산 동래구에서 출마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재웅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최근 한국콘텐츠 산업 일선에서 뛰어온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한류의 현주소와 잠재력에 대한 전망을 다룬 저서 <콘텐츠가 미래다>를 출간했다.
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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