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혜정 기자]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두 제약사가 '복제약' 시장에서 손을 잡았다. 안 그래도 혼탁한 시장에 대기업까지 뛰어드는 형국이라 업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국계 제약사 화이자와 LG생명과학은 복제약 제품에 대한 공동투자 및 판매를 위한 파트너십을 7일 체결했다. 최근 화이자는 '화이자 바이탈스' 브랜드를 선보이고 한국 복제약 시장 진출을 선언한 바 있다. 이번 계약으로 LG생명과학은 화이자의 복제약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판매는 화이자의 한국 지사가 맡는다.
화이자는 비아그라로 유명한 세계 1위 제약사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의약품인 고지혈증치료제 '리피토'도 화이자 제품이다. 혁신적 신약을 만드는 제약사로 명성이 높은 화이자가 복제약 시장에 군침을 흘리게 된 건 '실적 악화' 때문이다.
화이자의 사세가 기울기 시작한 건 2006년부터다. 사운을 걸고 개발하던 고지혈증약 '톨세트라핍'이 개발 막바지 단계에서 실패했다. 이후 주력 품목인 노바스크, 리피토, 비아그라(2012년 5월)의 특허가 줄줄이 만료돼 복제약과의 경쟁에 노출됐다.
통상 복제약이 나오면 신약의 매출은 크게는 반토막 난다. 매출은 줄고 신약개발 성과는 부진하자 '돈 벌기 쉬운' 복제약 사업에 눈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그러자 회사 측은 "우수한 품질의 복제약으로 환자의 선택권을 넓혀주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LG생명과학은 신약개발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국내 제약사다. 국내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신약 '팩티브'(항생제, 2002년)를 개발했다. 우리나라 신약개발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이 회사는 해마다 매출액의 20% 이상을 연구개발(R&D)비로 쏟아 붓고 있다. 단순 금액으로는 적지만 매출액 대비 투자비율로 보면 단연 국내 1위이며 세계 굴지의 제약사에도 뒤지지 않는다. 올해에도 매출액 대비 19%인 75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자 복제약 사업에 눈을 돌린 것이다. LG생명과학은 2005년 '복제약 프로젝트 담당' 조직을 신설했으며 2010년에는 R&D 출신의 김인철 사장 대신, 마케팅 전문으로 LG텔레콤 사장을 지낸 정일재 사장을 영입했다. 화이자의 복제약 사업에 참여한 것은 이런 변화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LG생명과학 관계자는 "오는 4월 일괄 약가인하 정책으로 약 200억원의 수익악화가 예견되는 상황"이라며 "신약에만 '올인'해서는 경영이 쉽지 않은 만큼 자금 확보를 위해 복제약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두 회사의 행보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제약사의 체질개선을 유도해 신약 전문과 복제약 전문제약사로 '교통정리'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LG생명과학과 화이자는 복지부의 신약개발 지원 대상인 '혁신형 제약기업' 1순위에 꼽히는 회사다.
신범수 기자 answer@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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