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아프니까 청춘이다'와는 또 다르게 청춘을 보듬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최근 '무취미의 권유'를 펴낸 무라카미 류가 그 주인공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류의 책이 돌고 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69'였습니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따뜻함'으로 청춘에게 다가갔다면, '69'는 '통쾌함'으로 청춘을 사로잡았습니다.
다소 선정적인 제목, '69'엔 많은 의미가 녹아 있습니다. 류는 이 69가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사임한, 그리고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전성기인 1969년을 말하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당시 류는 18살이었습니다. 그는 '69'에서 주인공 겐의 일화를 써내려가며 분명 지난날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틀에 박힌 교육 속에서 좌절한 청춘, '후진 세상'에 맞서 싸운 청춘을 말입니다.
류가 '69'에서 말하는 결론은 단순합니다.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나는 고교 시절 내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나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대목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통쾌하게 청춘을 그려낸 '69'와 따뜻하게 청춘을 바라보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카페에서 이들 책과는 달리 청춘을 '유쾌함'으로 적어낸 글을 한 편 봤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전하는 메시지엔 충분히 공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파보니 청승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방식이야 어떻든 누군가가 보듬어주길 바라는 청춘들의 고민은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모양입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청춘들의 반란을 통쾌하게 그려낸 '69'에 빠져들었던 고등학생 시절이 그립습니다. 통쾌함이든, 따뜻함이든, 유쾌함이든 다 좋습니다. 어떤 '함'이든 '69'나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청춘을 안아줄 수 있는 책들이 나오기를 기다려봅니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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