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후 대북 정책과 관련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해 주목된다. 특히 "북한이 빨리 안정되는 것이 주변국들의 이해와 일치한다"고 말해 사실상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여야 교섭단체 대표 및 원내대표와 회담을 갖고 "북한 주민에 대한 위로 표시와 조문단 제한적 허용,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유보 등 북한에 상징적으로 몇 가지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취한 조치들은 북한에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이런 내용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고 북한도 이 정도까지 (우리 정부가)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전방의 군도 낮은 수위의 경계상황만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이 빨리 안정되는 것이 주변국들의 이해와 일치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대북관계를 유연하게 할 수 있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 정치권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김정은 체제를 맞은 북한 정권과의 대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특히 북한의 안정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았다. 이는 김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북한 내부가 혼란에 빠질 경우, 한반도 안보 문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필요에 따라 대외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또 김정은 체제가 예상외로 공고하게 다져지고 있는 북한 내부의 상황이 반영됐다. 북한 내부의 급속한 변화가 없는 이상 후계자 김정은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먼저 대화를 제안함으로써 향후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민간 방북조문단에는 정부 실무자가 동행하기로 해 우리 정부가 모종의 제안을 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도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2009년 1월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3대 세습 체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해왔다. 북한의 혈맹인 중국조차 김정은을 공식적으로 후계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은 신속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중국은 김정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곧바로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무원 등 당·정·군의 핵심 4개 기관 명의의 조전을 북한으로 보냈다.
20일 오전에는 국가주석 후진타오가 직접 조문을 하면서 "우리는 조선 인민이 김정일 동지의 유지를 받들어 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단결해 김정은 동지의 영도 아래에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과 한반도의 장기적 평화와 안정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말해 처음으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인정했다.
미국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한 발언을 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21일 "김정일은 김정은을 공식 후계자로 지명했고 현 시점에서 변화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의 새 리더십'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김정은'으로 구체화 한 것이 세습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도 세습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없이 북한 내부의 변화를 유의깊게 바라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느냐 마느냐보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는 물론 모든 주변국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조영주 기자 yj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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