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보업계·정몽구재단 파격지원 앞서 발표
- 금융당국 은행권 공통 대출방법 마련 권고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은행권 최초로 학자금 대출상품 출시를 준비했던 우리은행이 고민에 빠졌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현대차정몽구재단(옛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 이하 정몽구재단) 등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학자금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한 데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공동으로 학자금 전환대출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학자금 대출이 이슈화됐던 9~10월 경부터 자체적으로 학자금 대출상품을 준비해 왔다. 이순우 우리은행장 또한 "부실한 대기업, 대기업이 꼬리자르기 한 기업들도 지원해주는 마당에 대학생들을 지원하지 못할 이유가 있느냐"며 격려해왔다. 우리은행의 이같은 행보는 은행권이 연 10% 대학생 대출은 불가능한 상품이라고 단정지은 뒤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컸다.
우리은행이 준비한 학자금 대출상품은 대출금리 연 9~15% 수준, 대출금액 500만원 이하, 원리금상환(10년) 조건이었다. 6개월 이상 정상적으로 원리금을 갚아나가면 점차 금리를 낮춰주는 방안도 검토됐다. 은행권에서 10% 수준의 금리로 소득이 없는 대학생에게 대출하는 것은 한마디로 파격이다.
물론 대학생 대출을 유흥비 등 기타 목적으로 탕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모의 동의를 꼭 얻게하고, 학점에 따라 대출상한선을 차등화하는 등의 조건을 달았다. 기존 저축은행이나 대부업권에서 학자금 대출을 목적으로 대출금액이 있는 경우에는 전환대출도 가능하게 했다. 사실상 모든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하지만 이 달 들어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생보업계가 지난 1일 200억원을 출연해 연 4.9% 금리로 1인당 최대 1000만원 한도로 대학생의 학자금 부채 상환을 돕겠다고 발표했고, 정몽구재단이 총 6500억원의 사재 출연을 통해 학자금을 지원하겠다고 4일 밝혔기 때문이다. 대출 창구는 KB국민은행이 맡기로 했다.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리스크를 감안하고 좋은 취지에서 학자금 대출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생보업계(연 4.9%), 현대차(최대 3년간 무이자 대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고금리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은행권에 대한 여론도 곱지 않은 마당에 좋은 일 하려다 오히려 비난만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금융당국에서 은행권 또한 생보업계와 마찬가지로 공동으로 학자금 대출 방안을 마련하라고 한 것도 우리은행이 주저하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권에 새로운 학자금 대출상품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기존 고금리의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주는 전환대출 상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은행권이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해 저금리로 환승하는 보증부대출 형식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새로운 학자금 대출상품을 마련하는 것이나, 기존 학자금 대출을 전환대출해주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고 답하고 있어 이견이 큰 상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생보업계나 현대차와의 금리 차이는 차치하고서라도, 은행권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어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며 "금융상품으로 사회공헌을 한다는 차원에서 리스크를 감안하고 검토한 것인데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